우리나라는 현재 영어교육에 다수의 국민이 매진하고 있고, 영어가 전체 사교육 지출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고 그에 따른 각종 사회적 부작용도 낳고 있다. 또 해마다 각종 영어자격시험(토익, 토플, 텝스 등)에 응시하는 국민수가 급증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초중고교생들의 영어시험 응시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영어시험 응시자가 2006년 기준으로 270만이 훌쩍 넘었고 토익과 토플로 유출되는 비용만도 한 해 4000억 여 원이 넘는다고 하니 심각한 국부유출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학원 강의, 언어연수, 유학 등 영어교육 자체에 드는 비용이 해마다 수조원에 이른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구촌 시대의 영어열풍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을 해결해보겠다며 내놓은 교육 계획안이 바로 영어공교육 강화 정책이다. 이경숙 인수위 위원장은 “모든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 영어교육 하나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사교육비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어서 이 부분을 국가과제로 삼고 5년간 가장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그 계획안에 따르면, 올해 중2 학생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0년부터 고교 영어 수업은 영어로 진행될 전망이며 또한 내년부터 농어촌 군(郡)지역에 생기는 기숙형 공립고에서 영어 이외의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영어몰입(沒入·Immersion)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을 주요골자로 하고 있는데, 이 같은 좋은 취지로 마련된 계획안이 발표되자마자 가장 반겨야 할 학부모들과 학생들, 그리고 교육계가 이상하게도 술렁이고 있다.

영어교육을 정상화해서 사교육비 지출을 줄인다는 취지로 마련된 계획안은 발표직후부터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인수위는 공교육 정상화를 기치로 내세우지만 학부모들과 교사집단에서는 계획안의 취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영어교육 양극화와 사교육 광풍이 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교육전문가들에 따르면, 인수위가 주장한대로 영어수업을 통해 "고등학교까지 다니면 공교육으로 영어를 쓸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그 대상은 일부 학생에 한정 되어야 만이 가능한데, 그것은 많은 반발과 사회적 문제, 즉 '그 일부 학생에 자기 자녀를 포함시키려는 사교육'을 불러 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즉 1등급부터 9등급까지로 나뉘어지는 영어등급제가 실시되면, 1등급을 얻기 위해 또 다시 학원가로 몰려가야하는 사태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실제로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원가에서는 이번 발표에 대해 쾌재를 부르며 벌써부터 미국 교과서에 기초한 수업과정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특히 현직 영어교사들은 수 십 년 동안 다른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어왔는데, 과연 2년 만에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이번 계획안이 자신들만을 희생양 삼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영어교사의 절반만이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의 영어수업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번 계획안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현직 영어교사들의 영어 재교육에 천문학적인 돈과 시간이 집중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서는 이번 정책이 사설학원들만 배 채우게 하는 결과가 되고 말리라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 대부분은 인수위의 이번 교육계획안이 교육현실을 무시한 결정이라는데 무게의 중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타 과목을 영어로 수업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영어몰입교육’의 효과에 대해서도 대부분 교육전문가들은 의문을 품는다. 현재 우리나라 일부 사립학교와 특수목적고에서 실행중인 영어몰입교육은 학급당 학생수가 적고 실력이 검증된 원어민 교사가 수업을 보조하는 등 여건이 일반학교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 캐나다 퀘벡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것으로 알려진 영어몰입교육은 싱가폴, 홍콩 등 영어공용화가 일반화된 국가에서 활용되는 방식으로 천지가 한국어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단기간에 효과를 내기는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일부 상위권 대학에서 현재 실시중인 영어수업의 교수-학습과정에 대해서도 그 준비부족으로 인해 역효과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위원장은 기러기아빠, 펭귄아빠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다며 그들의 고뇌를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영어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며 이번 교육정책안의 취지를 설명했지만 정작 주요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기러기아빠들의 고뇌를 걱정하는 인수위가 정작 자녀들을 해외로 유학 보낼 여유조차 없는 대부분의 서민들을 위한 대책은 과연 가지고 있는지 되묻고 있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마련된 정책도 상황과 현실에 맞춰 실행하지 않는다면 큰 반발감만 사고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교육 백년지계라는 말이 있듯이, 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차분하게 긴 호흡으로 가야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급변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낭비이며, 또한 후대에 큰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하다.

교육정책이 오직 소위 말하는 글로벌 경쟁력의 우위라는 목표만을 향해 간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은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영어를 곧 잘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보더라도 영어잘한다고 다 잘사는 것은 아니며, 영어 못하는 일본을 보더라도 영어못한다고 다 못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이번 정책안을 바라보면서 혹자는 일제식민시절, 학내에서 의무적으로 일본어를 말하고 써야했던 일본어 수업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실제로 강남의 영어유치원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각자 영어식 이름을 갖고 있으며 수업 중 한글사용이 금지되어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걱정이 드는 대목은 영어교육의 중요성만 부각된 나머지 그렇지 않아도 교육현장에서 힘을 잃어가는 인성교육이 더욱 발붙일 곳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의 1차 목적은 올바른 자기인격체를 형성하는 교양인이지 영어기능인이 아닌 것이다.

지구촌 시대를 맞이하면서 영어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지 이미 오래전이고 무엇보다도 국민 스스로가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영어가 제 아무리 귀한 생존전략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선택할 권리 또한 국민 스스로에게 있다.

영어 잘하는 국민이 된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볼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 모두 제쳐두고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같이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고, 영어는 그저 우리가 지구촌화된 세계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시쳇말로 영어 못해서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죽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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