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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하루
양수영 기자  |  suyoung@hp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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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4  10: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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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도시 테살로니키. 거리는 소음으로 시끄럽고 해변가 공원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로 가득하다. 이 황량하고 쓸쓸한 도시의 낡은 집에서 초로의 알렉산더는 외롭게 죽어가고 있다. 그리스의 유명한 시인으로 존경받는 그이지만 죽음 앞에서 지난 세월은 덧없이 무상하기만 하다. 병원에 들어가야 하지만 마지막 생의 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싶지 않은 알렉산더. 그는 그에게 남겨진 하루를 평생의 숙업인 19세기 시인 솔로모스의 흩어진 시어들을 찾는 여행으로 보내고자 한다.

우연히 짐을 정리하다가 30년 전, 아내 안나가 쓴 편지를 찾게 되면서 그의 여행은 과거와 현실, 기억과 환상이 교차하는 신비스러운 여행이 되어간다. 편지는 아내와 가족, 친구들과 함께 보냈던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하루로 그를 데려가고 회색빛 절망의 현실과 눈부신 햇살로 가득한 과거를 오가고 알렉산더는 젊은 시절 일에만 매달려 아내를 외롭게 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 왜 그때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을까! 알렉산더의 때늦은 후회는 다시 한번 그를 절망 속에 빠뜨린다.

여행 중인 알렉산더에게 또 하나의 깨달음은 알바니아 난민 소년이 전해준 솔로모스의 시어들을 통해 주어진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낸 시간이 그 어떤 위대한 시어보다 아름답고 영원하다는 것! 그토록 찾아헤매인 불멸의 시어란 바로 자신의 삶 속에 있었던 것이다.

소년을 보내고 텅빈 아파트로 돌아온 알렉산더는 어둠 속에서 베란다의 문을 연다. 그러자 행복했던 그날의 정경이 펼쳐지고 안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를 맞이한다. 알렉산더는 안나와 함께 춤을 추면서... 하루이지만 영원한, 내일을 기다린다.

< 율리시즈의 시선>으로 제 48회 깐느영화제를 찾았던 앙겔로풀로스는 에밀 쿠스트리챠의 영화 <언더그라운드>에게 아깝게 황금종려상을 빼앗기고 심사위원 대상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그가 다시 깐느의 초대에 응했을 때 <영원과 하루>는 채 편집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영화제가 개막한 이후에도 계속 믹싱작업 중이었던 이 최고의 기대작은 결국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그랑프리,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30여년을 줄기차게 자신만의 독특한 영상언어로 영화를 예술의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킨 시네아스트에게 바치는 세계 영화인의 찬사와 경배였으며, 20세기 마지막 거장의 존재를 세계영화사에 알린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이 영예로운 순간의 주인공인 된 앙겔로풀로스의 11번째 영화 <영원과 하루>는 스스로 영화인생을 돌아본 자화상 같은 작품이기에 이 수상이 더욱 뜻깊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영원과 하루>는 삶에 대한 예리한 철학적 성찰이 아름다운 그리스의 시어들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 놀라운 영화다. 특히 알렉산더가 알바니아 소년과 주고받는 아름다운 세 개의 그리스 시어들(코폴라, 세니띠스, 아르가디니)은 알렉산더가 처한 삶의 위기와 고통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누구나 한번쯤 살다보면 마주치게 될 삶의 의문들에 대한 앙겔로풀로스의 대답이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미명 하에 예술의 그림자를 좇다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린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하나. 사랑에 대한 깨달음! 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몰랐을까?

코폴라 ; 작은 꽃,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의 감정 상태

소년이 알렉산더에게 들려주는 첫 번째 단어 ‘코폴라’는 사랑에 대한 말이다. 생의 가장 크고 위대한 진실은 사랑 속에서 나오는 것임을 잊고 살았던 알렉산더의 뒤늦은 후회와 죽어가는 그를 위로하는 알바니아 소년과의 관계도 이 단어에 투영되어 있다. 어쩌면 인간 삶의 진실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코폴라가 되어주는 것. 안나는 알렉산더의 ‘코폴라’였고 알렉산더는 알바니아 소년의 ‘코폴라’가 된다. 작지만 소중한, 보이지 않지만 위대한 사랑의 존재, 그것이 우리가 영원으로 가는 첫 번째 비밀의 열쇠다

둘. 존재에 대한 깨달음! 왜 우리는 항상 이방인처럼 느끼는 걸까?

세니띠스 ;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를 이방인, 떠도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세니띠스’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말이다. 생명의 위협을 피해 고향을 떠난 소년과 자기의 언어를 찾지 못했다며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헤매이는 알렉산더의 존재가 이 말 안에 요약되어 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고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거주할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일 뿐이다. 이 깨달음은 유한한 삶을 받아들이고 영원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셋. 시간의 깨달음! 왜 우리는 항상 지난 뒤에서야 깨닫는걸까?

아르가디니 ; 밤이 너무 늦었다. 인간의 황혼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말

소년이 떠나기 전 알렉산더에게 마지막 남기는 말, 아르가디니는 시간에 대한 말이다. 멋진 싯구보다도 사랑하는 아내와 보낸 행복한 하루를 영원히 기억하게 된다는 깨달음. 알렉산더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아내를 잃은 후다. 언제나 그가 돌아봐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아내. 그녀의 사랑을 뒤늦게 알아본 알렉산더는 회한에 젖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되돌리기에 너무 늦었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사물은 불멸의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삶과의 이별을 앞두고 알렉산더가 너무 늦었다라고 깨닫는 순간 생의 소중함이 영원한 가치로 승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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