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은 밥짓고 밥되는 삶입니다. 제 농사는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밥이 되는 삶 농사입니다. 삶이 농사요 농사가 삶입니다. 그래서 밥과 똥을 한울님으로 모십니다.

어제는 가을 김장, 무, 배추씨를 심고 골마다 여름내 푹 삭혀 놓았던 똥을 살짝 뿌려주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라면 또 고랑마다 무, 배추에 닿지 않게 듬뿍 뿌려 줍니다. 똥거름이 얼마나 거름발이 좋은지 아실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모시는 비료(거름)가 있다면 바로 똥, 오줌 입니다. 배추님이나 무님 고추님 옥수수님들께 똥 모실때의 즐거움과 상쾌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콧노래 절로 나오고 똥 바가지를 잡은 손에 가락이 실립니다. 어깨춤이 절로 나오지요.

똥 장군에 똥 담아 지게에 지고
한걸음 두걸음 걸을때 마다

흔들 흔들 흔들춤 저절로 나고
한바가지 두바가지 뿌릴때 마다
너울 너울 춤추며 멀리퍼지네

멀리 퍼진 똥 향기(똥냄새) 땅에 잠길때
벌거숭이 지렁이 잠을 깨우네
옆에 자던 새싹들 함께 잠깨어

지렁이 새싹들 한마음 되어
흔들춤 너울춤 같이 춤추네
건너편 바람님 바람 춤추네

- 똥 풀이, 한원식 -

이 시는 제 스승님께서 ‘밭에 똥 모시면서 읊으신 시인데, 읽어볼수록 똥을 한울님으로 모시고 가는 농사꾼의 신명나는 삶이 깊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똥 한울님이 밥 한울님으로 오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시지요.

똥님, 지렁이님, 새싹님, 한마음, 한울양식(밥), 흔들춤, 너울춤, 바람님, 바람춤, 우주의 되돌림과 대자연의 막힘없는 흐름이 똥님을 통해 절로절로 되지요. 좋구나, 밥과 똥이 하나여! 일과 놀이가 하나여! 삶과 농사가 하나여! 농사가 밥 짓는 것이 되지 않으면 또한 뭇 생명의 밥이 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의 농사는 밥 짓고 밥되는 농사가 아니라, 빼앗고 죽여서 사고파는 농사가 되어 있습니다. 제 밥 짓는 농사는 쌀, 보리, 콩,(된장콩, 작은 검정콩, 푸른콩, 팥, 돈부, 땅콩, 울타리콩, 등등), 옥수수, 수수, 감자, 고구마, 참깨, 들깨, 고추, 배추, 무, 시금치, 쑥갓, 상추, 솔, 파, 양파, 마늘, 등등입니다.

벼농사는 약 두마지기 밭농사는 약 세마지기인데, 사실 이정도의 농사도 저희 부부가 일체의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하니까 조금 버거운 면도 있지만 이정도가 밥짓는 적정선입니다

밥의 자족성(自足성)이 이루어지지요. 밥상의 자족성이 없는 농사는 전문화, 분업화, 상품화 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밥(밥상)의 자족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저희는 점심, 저녁 두끼만 먹습니다. 통쌀(메통쌀, 현미玄米),통밀, 통보리, 콩(여러가지), 옥수수, 수수 등을 섞어 반쯤익혀 먹습니다. 통쌀만해도 찰쌀, 검은쌀, 붉은쌀, 일반쌀(다마금, 나눔벼)등이 섞여 있으니까 통쌀을 중심으로 다른 여러 통 곡식들이 십여가지 훨씬 넘게 섞여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자연식, 웰빙 음식인데, 저희는 밥을 한울로 모시니까 그 말로 해당될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밥 짓는 삶을 살지 않으면 미국 부시도 못 먹고 빌게이츠도 돈으로 못 사먹는 밥입니다.

밥은 한울이지요. 밥 한 그릇에 우주와 자연의 이치가 다 들어 있지요. 우주와 자연의 영원성, 밥 짓는다는 것은 씨 뿌리고 거두어 밥 모심을 지극정성으로 하는 것이며 우주와 자연의 영원함을 님으로 모신다는 것입니다.

밥이 곧 한울이고 밥 짓고 밥 모시는 것이 곧 한울님을 맞이하고 지극하게 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밥 짓고 농사라는 것입니다. 밥이 몸으로 들어오시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됩니다. 밥이 곧 몸이 됩니다. 밥이 곧 내님이요 ‘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님 맞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님’은 녹여야 ‘나’가 되지요. 그래서 저희들은 밥 한 숟가락을 백번이상 꼭꼭 정성스럽게 씹어 녹여버립니다. 실제로도 저희밥은 반쯤 익힌 통쌀 십곡(十穀) 밥이라 꼭꼭 씹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밥한 그릇을 통해서 우주와 자연의 이치를 맞이하고 모실 수 있듯이, 밥한 그릇을 통해서 지금의 세상살이를 온통으로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흰쌀에 하루 세게, 비료 농약 투성이 밥상, 밥 짓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 온갖 합성식풍을 먹고 끊임없는 욕심과 욕망으로 무한히 흘러가는 세상 밥. 밥의 뒤틀림. 입으로는 ‘님’(생명)을 떠들고 글로는 써대지만 밥 짓는 삶이 빠져버린 공허한 세상 밥, 밥 모심의 자족성이 빠져버린 온갖 정신적, 영적 글과 단체와 사람들의 세상 밥. 이러니 어떻게 밥으로 오셨다가 밥되는 삶으로 가는 것을 알 수가 있을까요.

천지만물이 다 밥 짓고 밥되는 삶으로 오셨다 가시는데 지금은 세상살이 사람살이는 밥도 짓지 않고 밥 먹으려하고 ,뭇 님들을 무자비하게 밥으로 삼으면서도 한사코 밥되는 것은 거부하고 있습니다.

저같이 이름 없는 농사꾼은 깊이 탄식할 수밖에 그리고 묵묵히 이 초록 녹색별에 있을 때까지 씨 뿌리며 밥 짓는 삶을 살다가 다시 밥으로 가는 것 밖에 다를 것이 없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서툴게 쓴 두시를 올리면서 여태까지 저의 부족한 넋두리를 마칠까 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님들께 고마움을 드립니다.

삶의 마지막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죽어가도록 내벼려 두십시오.
또 다른 삶(생명)의 문으로 가시는
마지막 자리
죽음을
병원도 의사도 진통제 주사도
간호사도 소독약 냄새도
옆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면 지금의 세상살이, 사람살이는
우주와 자연의 참삶에
너무도 동떨어져 있고
마찬가지로 삶의 절정 삶의 이룸(완성)인
죽음에 대해서도
완전하게 무지하니까 말입니다.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펼쳐지는 죽음이
저에게 오면 저는 이러고 싶습니다
어두침침한 방구석도 좋고
사람들 오가는 길모퉁이도 좋지만
제몸 제가 움직이지 못할 때
벌 나비 날으며 새 우는 곳
꽃피고 물 흐르는 곳.
자연 어머니품에 팔다리 쭉 펴 눕히고
가만히 가시게 내버려 두시고,
물(水) 밖에 다른 무엇은 아무것도 먹이지 말고
굶고 굶어서
텅빈 속으로 아무것도 없이
가만히, 조용히 잘 가시게 해주십시오.

숨이 다 잦아진 뒤에
저를, 아니 제 모습만 빌어있는 몸뚱이를
아름다운 땅
아무 곳에나 묻어 주십시오.
무덤 만들지 말고 그냥 묻되
그 위에 감나무들 밤나무들 복숭아나무들
평소 좋아하는 꽃과 나무
아무것이나 심어 주시고
자라거든 맛있게 따 잡수십시오.

그것도 저것도 아니 되면
평소 입던 옷을 입히든
벌거숭이든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그대로 나둬 주십시오.
자연 어머니가 다 알아서
해 주실 테니까요.

그리고
아름다운 초록 녹색별에
초대받아
오신대로 잘 오셨다가
신나게 잘 누리며 놀다
가신대로 잘 가셨다고
바쁜 삶 잠시 짬 내어
춤추고 노래 부르며
한바탕 신명나고 재미지게
잘 놀아 주십시오
-고맙고 고맙습니다.

-자연의 벗님들께 쓸데없이 쓰는 유언장-

미친 농사꾼은 이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네
햇님, 달님, 밤하늘의 별님,
새님울음, 구름님, 비님, 물님,
땅님, 나뭇님, 풀님, 벼님, 배추님,
고추님, 보리님,
지렁이님, 땅강아지님.......
하늘땅 모든 님 들을
값 매기고 사고파는 삶을
정녕 알수없네 알수가 없네.

음악이며 그림이며
텔레비젼이며 컴퓨터며
저축이며 노후연금이며 카드며 차량이며
유언이며 유산이며 세금이며
내 것이며 네 것이며
금 가르고 울타리치고 쌓아놓는 것을_.

민족이며 계급이며 계층이며
종교며 도덕이며 철학이며
예수며 석가며 극락이며 천당이며
이리 쪼개고 저리 찢어대어
죽이고 빼앗고 억누르는
세상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네 정녕코 알 수가 없네

이처럼 아름다운
초록 녹색 별에 와서
이처럼 완벽하게 갖추어진 잔치마당에
더하지도 덜하지도
찾을 것도 구할 것도 없이
모든님이 안전하게 오신 지구별에서
사람들만 홀로
가장 못 사네 가장 엉터리로 사네
뭇 님들은 스스로 절로절로
자족(自足)하며 잘도 사시는데_.

이러매
미친 농사꾼 깊이 탄식이며
텁텁한 막걸리
단숨에 드리키네.

사람 있되
사람 없네.
- 4336년 첫눈 오신 날 아랫방 뜨뜻한 구들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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