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차일드>는 배경음악이 전혀 없다. 또한 무지 때문이겠지만 알지 못했던 낯선 이름의 감독과 배우라고는 신인으로 보이는 두 청춘 남녀가 전부인 듯한 영화다. 영화는 잔잔하다 못해 맹물처럼 무미건조하고 싱겁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영화가 시작되면 앳된 얼굴의 소녀가 아기포대를 안고 걷는다. 소녀는 18살 소니아, 지금 막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갓난 아기 지미를 안고서. 도착해보니 집엔 다른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20살 먹은 남자친구 브뤼노가 그새 임대를 줘버린 모양이다. 간신히 브뤼노를 찾은 소니아, 그날 밤은 노숙자보호소 같은 곳에서 눈이라도 붙여야 할 터인데 별로 화도 내지 않는다. 브뤼노는 월 1,000유로(160만원)짜리 직업이나마 마음만 먹는다면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련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조무래기들이나 부려 좀도둑질을 하거나 아니면 동냥질이 더 마음 편한 그런 놈팽이다. 그런 브뤼노가 가진 돈 다 털어서 카브리올레를 렌트한다. (유럽은 거지도 참 운치 있다.) 차를 세우고 바게트를 씹으며 소니아는 행복에 겨워한다. 어느 날 소니아가 사회보장기금수당을 타러 긴 줄에 서있는 동안 브뤼노는 공원산책이라도 시켜준답시고 이제 생후 9일된 자신의 핏덩이 아기, 지미를 데리고 가서는 팔아버린다. 키우기도 힘든데 자신들보다 잘 키울 것 같고 아기야 또 낳으면 되는 거니까...

영화<더 차일드>는 칸느가 사랑하는 벨기에 출신의 장-피에르 다르덴 감독과 그의 동생 뤽 다르덴 감독의 작품이다. 둘은 함께 각본을 쓰고 함께 제작과 연출을 한다.

이 두 감독을 주목하게 만든 최초의 작품은 전미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영화<프로메제> (La Promesse, The Promise, 1996)이다. 이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영화<로제타>(Rosetta, 1999)를 통하여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18살의 에밀리 드켄은 전에 한번도 연기해 본적이 없는 신인이면서 그 해 칸느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다음 작품으로 복수와 구원의 문제를 그린 걸작 영화<아들>(Le Fils, The Son, 2002)은 올리비에 구르메에게 칸느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영화<더 차일드>(L’Enfant, The Child, 2005)는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겨주었고 2008년 영화<로나의 침묵>(Le Silence de Lorna, Lorna’s Silence, 2008)으로 칸느 각본상을, 2011년에는 영화<자전거를 탄 소년>(Le Gamin au Velo, The Kid with a Bike, 2011>으로 칸느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한마디로 데뷔작 이후 내놓은 작품 가운데 칸느의 시상대를 거쳐가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두 형제 감독의 영화는 등장하는 인물의 심리나 내면을 파고들지도 않고 설명하지도 않으면서 묵묵히 그들을 따라다니며 관찰자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얼핏 보기엔 화면이 거칠다. 그런데 이마저도 차갑게 계산되어진 의도된 영상이라 한다.

언제나 주류사회에서 배제된 계층의 인물들을 그리며 리얼리즘의 시선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누군가의 목숨을 걸 정도로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그저 보통 사람처럼 사는 것뿐이라던 처절하고 막막했던 영화<로제타>와는 또 다르다. 비루한 삶일망정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의 싹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

영화<더 차일드>에서 인륜을 저버린 브뤼노는 영화를 마칠 때쯤이면 오히려 측은해 보여서 어깨에 손이라도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답답한 현실의 무게는 어제와 진배없을지니 새삼스럽게 낙관적일 수는 없겠으나 그렇게라도 단 반걸음만이라도 자신을 찾아서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무언으로 영화는 암시한다.

보는 내내 막막한 듯 답답하기만 했던 영화의 잔상이 오랜시간동안 가슴에 겹겹이 쌓이는 것을 보니 좋은 영화를 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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