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수 산림기술사

봄이 오면 식물은 어김없이 새싹을 튀우고 다음 세대를 위하여 꽃을 피운다. 들판과 숲은 온통 생명으로 넘쳐나고 산과 들은 초록으로 물든다. 겨우내 움추렸던 식물들은 따스한 봄 햇살과 촉촉한 수분으로 생동감 넘치는 초록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푸른 지구별의 식물들은 열대, 온대, 한대지역 등 어떤 기후대를 막론하고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탄생과 죽음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봄을 감지하고 싹을 틔우며 아름답고 화려한 문양과 달콤한 향기로 꿀벌과 나비를 유혹할 수 있을까. 그것은 생명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생체시계의 기능 때문이다. 식물의 생체시계는 시간을 인지하고 밤과 낮을 구분하며 계절의 오고 감을 알아 차린다. 생체시계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상관없이 모든 생명체라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생존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생물에게 있어서 생체시계의 정지는 곧 죽음을 뜻한다.

해가 뜨면 녹색식물은 태양광을 이용하여 포도당을 만들고 해가 지면 한낮에 만들어진 양분을 줄기나 뿌리로 보내어 저장한다. 만약 낮이 계속되거나 밤이 계속된다면 식물은 생체시계의 기능을 상실하고 종국에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물체는 오랜 시간 동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과 진화를 거듭해 오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해 왔다. 낮과 밤, 여름과 겨울, 기온의 높낮이, 강수량의 차이 등 환경이 주는 천차만별의 변화를 스스로 인지하여 가장 능동적이고 완벽한 생명체로 진화해 온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유난히도 춥고 길었던 혹한의 겨울이 가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성큼 다가왔다. 세상은 온통 녹색 식물과 화사한 꽃내음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그동안의 답답함과 우울감을 보상이나 받으려는 듯이 산과 들로 봄나들이를 떠난다. 봄꽃은 희망이고 가을꽃은 행복이라 했다.

눈속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복수초, 연분홍과 진분홍 꽃이 유난히도 도드라진 박태기나무, 허공에 뿌려진 쌀알처럼 백색의 순수함이 돋보이는 조팝나무 등 주변의 산야는 온통 계절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 또한 따스해진 봄날의 기온처럼 새로운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으니 봄꽃을 희망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의 거부감도 없다.

봄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차가운 겨울이 필요하다. 겨울을 나는 동안 생장점은 낮은 온도에 노출되어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을 ‘춘화현상’이라고 한다. 즉 봄꽃이 개화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낮은 온도를 거친 후 낮이 길어지고 기온이 상승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식물의 생체시계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면서 유전적 인자가 식물체 내에 고정되어 일정 조건을 충족시켜야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결실을 이룬 후 다시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에 개화하는 등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 한다. 이러한 일련의 순환과정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항상 동일하게 반복된다.

산벚나무, 편백이 어우러진 대동 강운리 숲

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만고불변의 진리가 어느 한순간 무너지는 듯한 모습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구환경은 대단히 느리고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왔지만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각종 산업활동의 증가로 인하여 환경은 급속도록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간섭으로 인한 결과물이며 그러한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없이는 인류의 미래를 결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기후학자들의 견해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불렀다. 5월이 되어야 야외활동에 적당한 온도와 신록으로 뒤덮인 산야, 화려한 꽃으로 단장한 풍경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칭송을 받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기에 그러한 예찬을 받아 온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계절의 주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즉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겨울은 짧아지고 상대적으로 여름은 더 길어졌다. 봄철 평균 기온의 상승은 식물의 생체시계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생체시계의 변화는 식물 자체적인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올해 남부지방의 벚꽃 개화 시기는 예년에 비하여 약 10여일 정도 빨랐다고 한다. 봄꽃의 개화 시기가 빨라지게 되면 꽃의 화분을 채취하는 꿀벌이나 곤충들의 활동시기가 일치하지 않아 식물들에게는 수정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생태계는 상호 의존적이며 공생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순환과정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생태계는 연쇄적인 반응을 가져오게 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자연의 법칙 또한 마찬가지다. 숲속 작은 관목인 생강나무는 이른 봄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쬐기 위하여 일찍 꽃을 피운다. 생강나무 꽃이 지면 아그배나무, 왕벚나무 등이 뒤를 잇고 5월이면 귀룽나무, 때죽나무 등이 순차적으로 꽃을 피우게 되는데 이 모든 나무들이 일시에 꽃을 피운다면 자연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 진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3월 기온이 평균보다 높게 형성됨으로써 순차적으로 개화하여야 할 꽃들이 일시에 개화해 버린 것이다. 기후변화와 인구과잉, 식량감소 등으로 인한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앞으로 100년 이내에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가야한다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경고가 결코 예사로이 생각되지 않는 것은 나만이 느끼는 노파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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