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완>과 같은 영화의 영화평을 쓰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다. 물론 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완벽하게 정신분석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이야기는 이야기 그 자체보다도 담긴 의도에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의도들을 읽자면 우선 벅차고 어렵다. 또한 수많은 스릴러 영화보다 더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영화가 바로 <블랙 스완>과 같은 영화이다. 마치 내 자신이 발가벗겨져 마음속을 송두리째 난도질 당한 기분이다.

“순결하고 때 묻지 않은 소녀가 백조의 몸에 갇혀서 자유를 열망하지만, 오직 진실한 사랑만이 마법을 깰 수 있어. 그녀의 소원이 왕자에 의해 거의 이뤄지고 있었지. 그런데 왕자가 사랑을 고백하기 전에 욕정 가득한 쌍둥이 흑조가 그를 속이고 유혹해. 절망한 백조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말아. 죽어서야 자유를 찾게 되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동화의 이야기다. 주인공 니나는 백조와 흑조를 연기하는 발레리나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니나가 백조와 흑조를 연기해야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그림자와의 직면과 비극적 파멸을 다룬 영화이다.

인간의 무의식에 억압된 열등한 인격을 그림자라고 한다. 모범생은 불량학생을, 정숙한 부인은 천박한 창녀를. 정직한 자는 비열한 모사꾼의 그림자를 무의식에 갖고 있다. 우리는 그림자를 혐오하며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강하게 억압할수록 그림자는 무의식에서 더욱 큰 에너지를 갖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된다. 순결하고 모범적인 주인공 니나는 릴리에게 방만하고 난잡한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한다. 다른 사람들은 릴리의 태도를 개의치 않는데도 유독 니나는 그녀가 낯설고 불편하다.

그림자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격의 성숙을 위한 비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무의식에 억압된 어두운 그림자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정숙함이 지나치면 생기없는 금욕주의자가 되어 삶의 모든 즐거움이 사라져 우울증에 빠지는데 자신의 무의식에 억압된 천박한 그림자를 받아들인다면 우아하고 자유로윤 영혼을 갖게 될 것이다. 정직함이 지나치면 가혹한 율법주의자가 되어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혹독하게 비난하는데 이때 자신의 비열한 그림자를 통합하면 징직하되 유머와 융통성을 가진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니나의 그림자를 대변하는 릴리는 어둡고 성적으로 타락한 듯 보이지만 니나가 이런 태도를 의식의 자아에 통합하면 그녀는 결국 독립적이고 당당하며 성적 쾌락을 자유롭게 즐기고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멋진 여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통합하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엄청난 용기와 자아의 힘을 필요로 한다. 불행히도 니나의 자아는 그림자의 통합을 견딜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 영화 초반부터 니나는 먼발치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물을 보는 데 이것을 도플갱어라고 한다. 그녀의 또 다른 자아는 전혀 다른 상반된 태도, 자신감있고 당당한 모습이다. 이것은 그녀의 무의식에 억압된 그림자가 현실과의 경계를 뚫고 의식으로 범람해 들어와서 환각으로 체험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병적 증상이며 그녀의 자아가 붕괴될 위험성과 그녀가 무의식의 그림자를 견뎌낼 수 없을 만큼 약하다는 것을 암시하다.

니나는 토마스로부터 순결한 백조와 관능적인 흑조를 통합해야 하는 과제를 받는다. 한 사람이 양극단의 속성을 통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불가능에 가깝다. 백조와 흑조는 그녀가 쉽사리 통합할 수 있는 의식의 영역이 아닌 무의식의 심층의 원형상들이며 니나는 이것을 짧은 기간에 해내라는 강요를 받고 신경증적인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다가 결국 붕괴된다. 영화의 종반에 니나의 몸이 흑조로 변형되어 가는 것은 연약한 자아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원형상에 사로잡히는 것을 매우 잘 표현한 장면이다.

인격의 성숙을 위해 그림자를 통합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것은 매우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주의깊고 신중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특히 원형적 그림자가 나타날 때 그것은 너무 위험하여 결코 통합될 수 없다. 니나의 비극은 한 발레리나의 개인적인 비극이 아니라 미숙한 소녀가 어른이 되기 위해 겪어내는 고통스러운 통과의례와 그 실패에 따른 자아의 붕괴를 보여주는 여성의 보편적 비극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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