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은 1923년 일어난 간토 대지진을 배경으로 아나키스트 항일 단체인 '불령사'를 조직한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가 일제에 의해 황태자 암살을 모의한 대역죄 피의자로 조작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가네코 후미코의 수기와 평전, 재판기록, 당시 신문기사 등을 참고해 최대한 사실에 가깝도록 그리고자 애쓴 흔적이 두드러진다. 국내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실존 혁명가를 다룬 영화이고, 단순 독립운동을 넘어 당시 각종 반체제 사상의 중심지였던 도쿄를 무대로 천황제를 가차 없이 비판한 저항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실화의 내용은 이렇다. 70여만여 가구 파괴, 340만여 명의 이재민, 14만여명의 사망과 실종을 초래한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민중의 공포심을 극복시키기위해 일본 정부가 펼친 계략에 의해 조선인은 일본인을 죽이기 위해 우물에 독을 넣은 살인 민족이 되고 만다. 그로 인해 약 6.000여명의 무고한 조선인들은 학살당하고 만다. 나아가 일본 정부는 이 대학살 사건을 은폐시키기 위해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 인물로 지목한다.

일본의 계학을 눈치책 박열은 후미코와 함께 일본 촹태자 폭탄 암살계획을 자백하고 그 때부터 둘은 사형을 무릅쓴 재판과정에 온 몸과 정신을 던지는 사투를 시작한다.

그간 '실존' 인물을 다룬 시대극은 인물의 면모나 사건을 극 속에 충실히 반영하기보다는 '영화적 상상력'을 더 우위를 두고 제작됐다. 이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다큐멘터리처럼 실제의 사건을 단순히 재현하기보다는 작가와 감독의 의도와 상상력을 집어넣는 것이 영화적으로 더 자연스럽고 재미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관객은 영화 혹은 드라마에 역사적 사실이 왜곡 없이 충실히 반영되는 것을 선호하고, 흔히 영화 속 묘사가 실제 사건이라고 여기고 감상하는 경향이 있다. <박열>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이 점을 염두에 둔 듯 개봉 전후 "실제 사건과 영화가 90% 이상 일치한다"고 언론에 강조했다. 실제 사건이 워낙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를 보태거나 뺄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박열>은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듯 ‘고증에 충실한’작품이다. 가네코 후미코의 평전과 자서전, 박열 평전 및 아사히 신문기사 등을 속속들이 옮겨 놓은 그야말로 ‘사실에 충실한’역사극이다. 미화와 억지스러운 연출을 절제하고 사실을 충실히 옮겨냄으로써 실존인물과 작품에 대한 신뢰를 다지는데 성공한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과격한 대사로부터 시작되어 일본 정부와 권력층들에 온갖 것들을 내뱉는 박열과 후미코의 행위들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주 소재들이다. 하지만 필자의 감정을 사로잡은 박열의 매력은 휴머니즘이다. 불령사 단원들이 주장하는 ‘평등’에서부터 박열과 후미코가 주고받는 20대 초반 청춘들의 사랑스러운 애정 행각들은 영화의 매력 포인트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들이다.

역경 앞에서도 절대 굽히지 않는 신념과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다루는 <박열>은 결국 한 인물의 삶을 통해 관객들에게 생애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이준익 감독은 이번에도 제대로 해냈다. 역사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에 대한 심심한 고민이 느껴진다. 그가 한결같이 표현해오던 다양한 정(情)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과 없이 발휘됐다. 법정 영화가, 항일운동을 다룬 영화가 이같이 로맨틱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영화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나키스트들의 대화 방법이 익숙하게 와닿지 않은 점과 주인공들의 약간의 과장된 듯한 연기가 영화의 몰입도를 떨어뜨린점이 있다는 점이다.

박열과 후미코의 이념과 사상으로 서로 진실한 연대와 애정을 이루는 것은 알겠으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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