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호(목상고 교장)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6년 동안의 기나긴 학업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언제일까? 중3이나 고3, 아니면 대학 졸업학년일까? 관련 분야 학자들은 초등학교 3학년 시기라고 답한다. 즉,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읽기 또는 독해능력 수준이 이후의 학교 공부와 사회생활의 성공 여부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시기의 읽기능력이 중요하다는 근거는 다양하다. 먼저, 초등학교 저학년인 1-2학년 시기는 글자와 소리의 관계를 인식하여 단어를 소리내어 읽는 것을 배우는 ‘읽기 학습’(learning to read) 단계이다. 저학년 때 단어를 배우기는 하지만 사람, 물건 등 대부분 일상생활과 관련된 구체적인 개념어들이다. 초등학교 중학년인 3-4학년 시기는 단어를 단순히 읽기보다 추상적인 개념어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학습 읽기’(learning to read) 단계이다. 여기서 학습 읽기 단계에서 사용하는 ‘reading’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다’(글자 해독 : decoding)는 뜻이 아닌 ‘글자의 의미를 안다’(독해 : reading comprehension)를 뜻한다. 저학년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교실, 책상, 악어, 뱀 등 개별적인 사람이나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단어들을 배운다면, 중학년에서는 가족이나 친척, 교실정리 등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개념어나 악어와 뱀을 공통적인 속성에 따라 분류하는 파충류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도 배워야 한다.

더욱이 1-2학년 시기엔 일상생활에 필요한 5,000개 정도의 단어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교과서의 어휘수도 그 정도로 한정되지만, 3학년 시기에는 사회와 과학 등 세분화된 교과를 배우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교과서 어휘수도 2학년까지 습득한 단어의 2배인 9,000여 개로 급증하고, 4학년 때는 12,000여 개 등으로 계속 증가한다. 이렇게 어휘 학습 면에서 부담이 큰 3학년 시기에 어휘력이 뒤처지면 4학년 때 학습 슬럼프에 빠지게 되고, 심지어 책을 읽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3학년 시기 초등학생들의 학습 특성을 이해하여 4학년 때 지원해 주지 않으면 4학년의 슬럼프, 이후의 학습 실패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뉴욕시립대(CUNY) 사회학과 교수인 헤르난데즈(Donald J. Hernandez)는 2011년 미국교육학회 발표 논문에서 초등학교 3학년 시기가 이후의 학습 성패의 큰 흐름을 시작하는 변곡점(pivot point)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읽기능력인 독해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19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비율(16%)은 다른 읽기능력 우수학생들이 탈락하는 비율(4%)의 4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에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초등학생 4학년 대상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NAEP: 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al Progress)를 매년 전집형으로 실시하고 학력실태 분석에 따른 다각적인 지원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교육과정 고시를 통해 초등학교 언어교육과 국어사전 활용교육을 매우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초등 1-2학년 동안 지난해까지 27차시였던 한글교육을 62차시로 확대하여 교육학고 있다. 또한, 초등 4학년 6월에 9차시 동안 배우는 국어교과서의 8단원 명칭은 ‘국어사전과 함께’이며, 단원 학습목표는 ‘낱말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글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이다. 교육과정의 관련 부분에서 초등 3학년 전후로 ‘읽기 학습’과 ‘학습 읽기’를 제대로 실시하려는 정책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는 4학년의 국어사전 활용에 대한 관심과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 걱정이다. 초⋅중⋅고 12년을 통틀어 유일하게 나오는 국어사전 학습 단원에서 학생들은 실제로 사전을 확인해 보면서 배워야 할 텐데 대부분의 실제 수업은 사전 없이 이뤄지고 있다. 초등학교 때 국어사전 활용 효과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은 계속해서 사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고등학생이 되어도 모르는 어휘를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에서 찾아 스스로 확인하면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의미도 모른 체 무조건 암기하거나 대강 틀린 의미로 인식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 청소년들의 기본 어휘력 약화 문제의 한 원인이 학교에서 사라진 국어사전 교육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6월과 7월은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무척 힘든 시기이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달이어야 한다. 국어사전을 활용하여 명사, 형용사, 동사 등 어려운 품사의 개념을 처음으로 배워야 한다. 사전에서 한자를 확인하면서 한자어로 된 수많은 학습용어의 개념을 이해하는 방법도 터득해야 할 것이다. 교과서를 읽을 때 잘 모르는 단어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확인하면서 알아가는 재미도 느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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