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오 박사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방분권 공화국을 천명하고 정치권과 국회, 시민사회 등에서 주장하는 개헌의 필요성을 수용하여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정치·행정분과위원회 박범계 위원장은 “대통령이 말씀하신 자치입법, 자치행정, 자치재정, 자치복지 등 네 가지 부분에 있어 긍정적인 개헌 조치를 하는 것이 우선적 고려 사항이다”라고 강조하고 “문 대통령은 지방분권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이야말로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는 길이고,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게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헌법은 지방자치를 허용하고는 있지만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자치만 가능하도록 한 중앙집권적 헌법이다. 우리 헌법은 제117조와 제118조 두 개 조항에서 지방자치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제117조는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입법권, 재정권, 조직권을 국회와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지방분권개헌국민운동 김형기 상임의장은 “지방분권 없는 지방자치 없고, 개헌 없는 지방분권 없다”고 강조하면서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지방분권개헌을 통해 중앙집권체제를 지방분권체제로 전환하여야 함”을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중앙집권적 헌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이 이루어질 수 없고 지방자치는 여전히 ‘무늬만 자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지방분권이 주요한 국정과제로 등장한 것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이후부터이다. 신행정수도건설사업을 비롯하여 국정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정책의 주요 목표이자 판단기준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1987년 개정된 헌법이 가지고 있는 지방자치의 ‘부활’이라는 패러다임의 한계 속에서 분권국가를 추진하다 보니 규범적 장애물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지방분권정책은 2004년 가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을 무효화함으로써 좌절을 겪게 된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지방분권정책을 헌법적 차원에서 추진하지 않고 입법적 차원에서 추진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법률정치는 크게 네 가지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가장 하위 차원은 기존의 법률을 집행·적용하는 법집행정치의 차원, 두 번째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 법률을 개정하는 입법정치 차원, 그 위에는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따지는 헌법해석정치의 차원이고, 가장 상위 차원은 헌법의 내용을 변경하는 헌법개정정치 차원이다. 노무현 정부는 신행정수도건설 등 지방분권정책에 있어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법집행정치 및 입법정치차원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헌법재판소를 무대로 벌어진 헌법정치투쟁에서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지방분권 공화국’의 실현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 경험에서 보듯이 입법정치 차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교훈삼아 헌법개정정치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17년 1월 3일 출범한 국회 개헌특위는 중앙집중형 권력구조 재편을 위해 중앙권력의 과감한 지방이양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개헌특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방분권 개헌의 주요내용은 다음 네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①헌법 전문과 총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임을 선언, ②헌법 제118조의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명칭 변경, ③중앙-지방 간 협력회의 설치 근거를 헌법에 명시, ④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제도도입 등이다. 이외에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에서 제안한 내용을 살펴보면 ①법률의 종류를 국가법률과 자치법률로 구분하고, 자치법률의 입법권한을 지방의회에 부여, ②지방자치단체의 종류, 계층, 조직 구조를 주민 스스로 선택, ③국가와 지방의 역할배분에 지방 우선원칙 및 주민참여와 직접민주주의 활성화, ④국가와 지방정부 간 합리적 재원배분을 위해 국세와 지방세의 이원구조와 지역 간 재정조정제도를 헌법에 명시, ⑤국가사무 및 위임사무의 비용은 국가가 전액 부담하고 이양할 경우 재원까지 함께 이양, ⑥중앙-지방정부 상호 간 국정운영 주체로서 지방자치제도 개혁을 주도할 지방정부 연합체의 헌법적 근거 규정 등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헌법은 지방정부의 손발을 묶어놓고 중앙정부만 쳐다보도록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모든 지방의 살림살이까지 챙기고 간섭하다보니 막상 국가적인 커다란 과제에 집중할 시간을 잃고 있다. 중앙정부의 획일화된 법령과 정책은 지방 실정에 맞지 않거나 오히려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중앙정부는 하지 않아도 될 일 때문에 과부하가 걸려있고, 지방정부는 손발이 묶여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러한 실정은 누구보다도 지방정치인과 지역주민이 잘 알 것이다. 지방정치인과 지역 주민이 하나가 되어 지방분권을 위한 헌법 개정에 앞장서야 한다. 지방분권형 개헌은 지역발전은 물론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시대적 요구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지방분권 공화국’의 실현은 지방분권형 개헌에 달려 있으며,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나라다운 나라를 열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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