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조각 훔치고 5년을 언도받고 수감생활 중에 탈옥을 시도하다가 형량이 19년으로 늘어난다. 빵 한 조각 도둑질한 죄로 어떻게 19년이나 복역할 수 있느냐고 고개를 흔들겠지만 작가 빅토르 위고가 문제 삼았던 프랑스 19세기의 부조리한 형사법이 그저 어두운 한 시대의 유산인 것만은 아니다.

그와 유사한 법은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한국의 장발장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이 그것이다. 특가법 5조 4항의 상습절도죄 조항에 따르면 ‘상습적으로’ 절도를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두 번 이상 이 법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으면 같은 조의 6항에 따라 법정형이 최소 6년이 된다. 징역 5년 이상인 살인죄보다도 하한이 더 높은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이 법이 적용되는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거의 생계형 절도로서, 편취한 금액 자체는 크지 않은 반면 범죄자는 중형을 선고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백화점에서 요구르트를 훔친 72세 노인에게 징역 2년이 선고되는 등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판결들이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잡범들에게 중형을 내리는 것이 법적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여론 때문인지 근래 헌재에서는 비슷한 취지의 법들이 연달아 위헌판결을 받았고 2015년 2월엔 “형법 조항과 똑같은 구성요건을 규정하면서 법정형만 상향 조정해 형벌 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어 헌법에 위반된다”면서 ‘상습절도 가중처벌’에 대해 위헌결정이 내려졌다.

대표적인 ‘무전유죄법’이었던 ‘상습절도 가중처벌’이 퇴출됐지만 우리 사법계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풍토는 여전히 철옹성처럼 견고하며, 무엇보다도 법리해석에 있어서도 그러한 풍토가 거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는 듯 보인다. 실수로 사납금 2,400원을 누락해 회사에서 해고가 됐던 17년 경력의 버스기사는 해고무효확인소송 2심에서 원고패소 판결됐다. 횡령액이 아무리 작더라도 범법행위라는 것이다.

반면 그런 법원이 재벌 총수들에게는 너무도 관대했다. 지난해 9월,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를 받았던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그리고 지난 19일 430억원의 뇌물제공혐의를 받고 있는 삼성 이재용에 대한 영장기각 사유는 마치 그대로 베낀 듯 닮았다.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게 주요 골자다.

배출가스 조작 사건의 폴크스바겐 박동훈 전 사장,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존 리 전 옥시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도 이와 비슷한 사유로 기각됐던 바 있다. 사회적 파장과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글로벌 기업 관련 사건들에 대해 법원이 실질적으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너무 엄격했던 법적용과 대조를 이루면서 사회각계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2,400원을 누락해 회사에서 해고가 됐던 버스기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뉴스를 보고 한국을 뜨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이 부회장의 영장기각 사유의 하나로 조의연 판사가 적시한 ‘피의자의 주거 및 생활환경 고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한국 사법계의 하나의 아킬레스건이 아닌지 의심해보게 만든다. 법원이 언제 단 한번이라도 서민의 생활환경을 고려한 적이 있었던가.

유년시절에 우리가 읽었던 축약본 ‘장발장’은 한 비범한 범죄자가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주교의 은총으로 개과천선한다는 휴먼 드라마였는데 여기서 장발장이 처한 혹독한 상황은 그저 한 개인의 불행으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빅토르 위고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 개인의 불행과 그것을 극복해가는 영웅주의가 아니라 한 부조리한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가야 했던 ‘딱한 사람들(Les Miserable)’의 이야기다.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인물들이 처한 각자의 불행이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불운이듯 우리사회의 많은 불행도 국가가 생산한 불행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법원이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행보를 계속한다면 법원은 스스로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약 30년 전 올림픽 열기가 한창이던 1988년, 교도소 이감 중 탈옥해 인질극을 벌였던 지강헌 일당은 법의 형평성을 문제삼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죽어갔다. 하지만 30년여이 지났지만 변한 게 없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변화를 당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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