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정 청문회에서도 다시 드러났다시피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핵심은 정경유착이다. 청문회장 카메라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바보 코스프레를 하는 기업총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울화통이 터진 국민들이 많았을 것이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연루된 대기업 총수들은 청문회에 나와 하나같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지만 현재까지 불거진 의혹들로만 보더라도 그들도 피해자라기 보다는 정경유착의 공범이 가능성이 커졌다.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은 ‘우리나라 재벌들은 조폭들의 운영방식과 같다’는 소신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 전사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재벌들의 생리에 대해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사를 통해 정치권과 재벌들이 영위해온 공생관계를 들여다보면 정경유착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는 사실상 ‘삼성 청문회’나 다름없었다. 최순실 일가에 대한 100억원대에 이르는 특혜지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성사를 위한 포석작업이었다는 의혹,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서 합병에 찬성하는 딜을 했다는 여러 정황들, 합병안이 가결된 날 삼성이 최순실 측에 37억원을 송금한 사실 등 우연이라고 하기에 아귀가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일련의 사태들.

정경유착의 상징이 돼버린 삼성이 이제 정치자금 제공 등 각종 불법행위의 온상으로 지목받아온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말하지만 진정성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사장은 청문회에 나와 “삼성의 범죄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지만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부덕의 소치이며 뭐라고 꾸짖으셔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사죄는 하지만 내 잘못은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 발언의 재벌버전 쯤 되겠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법치주의의 무력화다. 정경유착의 저변에는 대통령의 초헌법적인 인식이 놓여 있다. 박 대통령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정권실세를 통해 자금모금을 조직적으로 지시하면서도 그것이 잘못인지 몰랐으며 자신은 선의로 했다고 주장한다. 만일 대통령이 그런 간단한 상식조차 정말 몰랐다고 한다면 그런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의 자괴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폭로된 일련의 사건들과 박 대통령의 해명을 들어보면 법에 대한 대통령의 저급한 인식수준의 단면을 볼 수 있다. 헌법을 무력화했던 유신의 추억 때문인지 박 대통령은 언제나 초법적인 자세를 견지해 왔고 현대 민주주의 기본원칙인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에 대한 무력화는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법부 무력화는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친박의원들을 동원해 유 원내대표를 당에서 찍어내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을 때 절정에 달했다. 당청관계를 입법부와 사법부의 관계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상명하복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조폭적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사법부 길들이기는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해졌는데 첫째는 검찰출신 대법관 만들기 계획이고 둘째는 고위법관을 행정부 고위직으로 임명하는 방식이다. 사법권마저도 정권에 대한 충성경쟁에 들게 만들기 위함이었는데 사법부와 행정부가 상호인사교류하는 것은 헌법위반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받아적은 대통령 말씀자료에는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사법부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보수·진보 갈등 관련 판결시 진보 쪽에 유리하게 선고하는 관행 문제”라든가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론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 “법원도 국가안보에 책임있다는 멘트 필요” 등등 대통령이 직접 사법부 길들이기를 겨냥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상식에 어긋나게, 그리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런 말들을 쉽게 내뱉었다는 점은 충격이다.

박근혜 정권은 정당성이 부족한 정권의 한계를 사법부 길들이기를 통해 만회하려고 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KBS노조파업사건 등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재판 등에 관여하고 법원의 영장기각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압박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양승태 대법원장을 사찰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유신시절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했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40여년의 세월동안, 그리고 1998년 정계입문이후 18년 동안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에 대해서 검증할 기회가 적지 않았지만 결국 하지 못했기에 오늘의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서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날 때마다 스스로 권위에 눌려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현대사의 비극에서 단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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