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헌정문란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압도적으로 의결했다. 최순실 스캔들 촉발이후 지난 6주 동안 전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촛불집회로 하야와 탄핵에 대해 국민적 요구가 점점 커져갔고 국회는 그동안 몇 차례 좌고우면이 있었지만 결국 민중의 염원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끝까지 믿었던 친박계 의원 일부도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대의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특히 주말마다 100만, 200만을 훌쩍 넘는 민중들이 광장에 모였지만 3차 촛불집회 이후로는 연행자가 단 한명도 없었을 만큼 평화시위 기조가 이어졌다. 민중의 위대한 승리이자 무혈혁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탄핵 가결에 책임을 지고 21일로 사퇴일을 정하고 후임자가 정해지는 대로 즉시 사퇴키로 했고 정진석 원내대표 역시 사퇴할 것임을 표명했다. 탄핵 가결 직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피눈물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알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부덕과 불찰로 혼란을 일으켜 송구스럽다”고 소감을 밝히면서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 박 대통령은 탄핵가결이 있던 날 4명의 변호인단을 꾸려 앞으로 있을 헌재 재판과정과 특검수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힘과 동시에 그동안 보류해둔 최재경 민정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고 조대환 변호사를 후임으로 내정하는 등 탄핵대비에 들어간 모습이다. 특히 최 수석의 후임으로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으로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원한의 대상이 됐던 조대환 변호사를 임명한 것은 마지막까지 권력의 끈을 놓치 않겠다는 대통령의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 스스로 헌재에서의 탄핵기각을 통해 대통령에 복귀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청와대 비서실도 직무정지된 대통령에게 국정보고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논란을 낳고 있지만, 보다 냉정하게 보자면 박 대통령은 이미 사망신고를 받은 것과 다를 바없다. 이미 정치적 탄핵은 이루어졌고 이제 법적 탄핵절차만 남은 것이다.

그걸 잘 아는 국민들은 탄핵절차와 별개로 대통령의 즉각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 탄핵가결 다음날인 10일에도 여전히 전국에 104만의 촛불이 타오른 것은 단순히 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넘어 뿌리깊은 정경유착과 경제적 양극화로 갈갈이 찢어진 우리사회의 현실과 기득권 체제를 심판하고자 하는 국민 일반의지의 표출이다.

그래서 이제는 ‘포스트 87체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간접선거에 의한 군부독재를 막고 장기집권에 따른 권력사유화를 막으려는 목적이 강했던 87체제는 대통령 5년 단임제와 헌법재판소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동안 여러 정권들을 거치면서 기존의 적폐들이 반복되는 등 한계점을 그대로 노출해왔다. 그리고 이번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이 87체제의 임계점에 봉착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사실 지금 타오르고 있는 촛불은 무소불위로 권력을 전횡한 대통령에 대해 분노했을 뿐만아니라 국회에 대해서도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는 대의제도에 대해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제도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권력구조 개편 움직임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체제와 우리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변화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정권은 계속 바뀌었지만 재벌개혁은 계속 실패하고 정경유착도 그대로이며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지금 광장에 울려퍼지는 국민의 목소리는 대한민국 반세기를 이끌어온 박정희 패러다임에 대한 거부다. 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함해 이제 박정희 패러다임에 작별을 고하고, 포스트 박정희 시대의 도래를 맞이해야 할 때다. 혹자는 지금이 하늘이 우리민족에 내린 위대한 기회라고 말한다.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 가장 위대한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진정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꿈꿀 시간이다.

그래서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개헌논의에 군불을 지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나오고 있지만 반면에 헌법을 지키지 않은 대통령이 문제이지 헌법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비록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 개헌논의는 적절치 않다는 국민 의견이 대다수지만 향후 제왕적 권력구조 개편 등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자는 의견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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