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권진주필

여름이 갔다. 선풍기와 에어컨의 노동을 칭찬하며 발명자에게는 따로 술 한 잔 드린다. 2016년 여름은 가고 내게는 사진집 몇 권만 남았다. 기록적인 더위 속에서 건성건성 읽은 책이 사진집이었다. 그러나 6,70년대 옛사진 몇 장은 내가 여름과 맞서게 했다. 견디게 했다. 건너게 했다. 나무 그늘과 샘물, 부채만으로 삼복더위와 맞서던 시절의 사진이다.

8월 마지막 주말에 1박 2일 단체 나들이에 나섰는데, 가는 곳마다 누구다 없이 사진촬영에 열중이었다. 관광을 기념하고 관광지를 인증하는 사진이다. 폰카로 사진을 찍는 시대답다. 다들 하는 말이 나중에는 사진만 남는다고 한다. 그럴 것 같다. 세월은 가도 기억은 남듯이 사람은 가도 사진은 남는다. 그 사진은 삶의 이력이다. 증거다. 증언이다. 삶의 내력이다. 표정이다. 속살이다. 우리는 보는 것의 과잉시대에 살고 있다. 보여주기 위한 시도가 너무 많다보니 보는 것에 식상해 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사진은 보는 것의 과잉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화나 책은 나를 주목해 보라고 요구 하지만 사진은 겸손하다. 겸허하다. 사진은 조금만 봐 주라고 한다. 눈의 시간외 근무나 야근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책을 읽다가는 안경알을 닦는다. 영화를 보다가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한다. 눈의 집중을 요구하기에 그렇다. 이에 반해서 사진은 눈의 집중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진집은 그냥 책장을 넘기면서 쉬엄쉬엄 보면 된다. 넘기다가 눈길이 멈추는 사진이 있으면 눈길을 주다가 가면 된다. 사진은 눈길의 과도한 주목을 요구하지 않는다. 산책을 하듯이 편하게 갈 길을 가기를 허락한다.

사진이 눈길의 주목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눈길의 주목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 자세는 그렇지만 사진은 때로 과도한 주목도 받는다. 시간의 과도한 주목이 아니다. 질적인 주목이다. 사진은 우리들의 눈길이 양적인 시간으로 머무르는 것을 사양하고, 질적인 시간으로 머무르게 권유한다. 우리는 사진의 이런 품성과 배려를 두고 사진을 감상하는 것이 눈에게 휴식을 주는 행위라고 단정한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모든 것을 양으로 쉽게쉽게 측량해 내는 선입견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진을 감상할 때 어떤 사진은 시력의 집중이 요구된다. 그 사진은 단편소설 한 편 시력을 요구하기도 하고, 시 한편 시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것은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의미와 연동된다. 사진이 담고 있는 의미가 뚜렷한 사진일수록 우리의 눈은 집중한다. 몰입한다. 사진은 저마다 삶을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좋은 사진은 편안하게 말을 건넨다. 차 한 잔 하면서 친구와 담소를 하듯이 말한다. 그러나 몰입해 보다보면 술잔을 주고받는 술자리처럼 약간은 풀어진 모습으로 말을 건네기도 한다. 사진은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기에 우리는 경계를 하지 않고 대면한다. 그러나 사진은 한 번 대면하면 이미 보았기에 불편해 지기도 한다.

일상에서 두고 쓰는 말이 ‘언제 술 한 잔’ 하자는 것인데 술자리가 되면 듣기 거북한 이야기도 나온다. 사진 감상은 술자리와 같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사진이 나서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이 나서서 우리를 반성하게, 불편하게, 다짐하게 하는 것이다. 사진은 말하지 않는다. 사진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려는 간절한 자세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 간절한 자세는 어떤 연설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다. 그 자세를 볼 수 있는,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사진을 대하는 각자의 안목에 비례한다.

사진은 사진 스스로 피사체를 설명하거나 대변하지 않는다. 사진은 그 때 그 시간을 정지시키고, 그 곳 그 장소를 고정시키고, 그 것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찍을 뿐이다. 나머지는 사진을 대하는 우리들 몫이다. 그렇기에 장롱 속에 누워있는 사진, 앨범 속에 앉아 있는 사진, 안방 액자 속에 서 있는 사진들을 불러내서 사진집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우리 함평의 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했으면 한다. 각설하고, 며칠 있으면 추석이다. 올 추석에는 고향마을 사진을 찍자. 고향집 문 앞에서, 마당에서 온가족 사진을 찍자. 사진은 남는다. 사진은 남아서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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