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살해를 당했다.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현장을 찾아 피해자를 애도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등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경찰은 범인이 정신분열증세가 있었던 것에 근거해서 ‘묻지마 범죄’로 결론지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여성혐오에서 비롯됐다고 보았다. 범인의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 병력이 발단이 됐다.

어쨌든 그러한 추모열기는 여성혐오 반대 목소리로 이어져 현장에서는 여성혐오반대 피켓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성혐오 범죄 주장에 대해 일부 남성들이 반발했고 ‘일베’ 등 일부 극단적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추모열기를 조롱하며 악성댓글로 여성피해자를 폄하하는 언어폭력이 행해졌고 추모현장에서는 일부 남성들과 여성들이 서로 혐오를 외치며 충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로부터 십여 일 후인 지난달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는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세 청년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사건직후 서울메트로 측에서는 죽은 청년이 작업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며 고인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고인의 가방에서 컵라면이 나오면서 분노여론이 불같이 일어났다.

애초 지킬 수 없었던 ‘안전 매뉴얼’을 만들어놓은 용역업체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고 그것이 용역업체와 서울메트로 간의 계약내용, 즉 고장접수 1시간 이내 현장도착이라는 타임 리미트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채 꽃이 피기도 전에 최후를 맞이한 청년의 죽음 뒤에 ‘메피아(메트로+마피아)’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에도 청년이 사고를 당한 구의역에는 추모행렬이 이어졌고 시민들은 포스트잇에 애도의 글을 써 붙이며 꿈 많던 청년의 때 이른 죽음을 추모했다. 그런데 엄숙한 추모현장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메갈리아’와 ‘워마드’ 같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고인을 조롱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혐오 범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청년의 죽음에 대해 '재기해'(남성연대 故 성재기 대표의 죽음을 희롱하며 상대방을 향해 '자살해라' 라는 뜻의 속어)라는 표현을 써가며 조롱을 이어갔고 심지어는 ‘사망하여 탈조선한 김치남이 잘 죽었는데 축하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글까지 등장했다.

불과 십여 일의 간격을 두고 발생한 우리사회의 비극적인 두 사건에 대해 남녀 주체만 바뀌었을 뿐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를 반복했던 소모적인 현실, 그리고 이러한 젠더혐오의 극단주의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된 안타까운 청춘들의 죽음만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저 우리사회 일부에서 벌어지는 극단주의의 단상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앞서 얘기했던 ‘일베’ ‘메갈리아’ ‘워마드’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는 청소년들이 쉽게 영향을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뚤어진 사회관과 편견이 주입되는 문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사회 현상을 젠더혐오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들 위험성이 우려되는 것이다. 증오가 혐오를 낳고 혐오는 다시 증오를 낳는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들여다보는 동안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볼 것이기에” 라고 말했다. 니체가 저서 ‘선악의 피안’에서 얘기했던 이 말보다 현재 우리사회에 만연된 젠더혐오 극단주의 현상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은 없는 듯하다.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에서 아무 이유 없이 살해당한 20대 여성과 끼니도 챙기지 못한 채 컵라면 한 개를 들고 업무에 나섰다 죽음을 당한 19세 비정규직 청년.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까지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는 한국사회. 이렇듯 조현증을 앓고 있는 우리사회, 누가 이 망상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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