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은 역사적으로 600여년의 전통을 지닌 지역공동체 사회다. 이제는 마을마다 집성촌 거주형태는 드물어졌지만 지역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여전히 혈족 개념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알게 된다. 반면 주민들의 생활양식과 소비패턴을 들여다보면 급격한 도시화 경향 또한 감지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같은 취미,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원거리 친교를 맺거나 커뮤니티를 형성할 기회가 늘어남으로써 그 만큼 지리적 개념의 결속은 약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익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사회관계망인 소셜 네트워크를 경험해 본 사람은 가상공간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적, 성별, 종교,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친구가 되는 사이버공간에서 인간관계는 무한히 확장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때로는 깨지기 쉬운 환상인지 깨닫게 되기도 한다. 거기서는 누구든지 상대가 싫으면 한 번의 클릭으로 상대를 삭제하거나 차단하면 끝이다. 그때부터 상대는 나의 우주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반면 물리적 생활세계인 지역공동체는 전혀 다르다. 아무리 싫은 친구가 있더라도 오래지 않아 또 그와 마주치게 된다. 아무리 상대가 싫더라도 그 상대의 존재를 지울 수 없다. 우리는 하나의 지정학적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해서 그와 불신을 하고 등을 돌리고 살 것인가, 아니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화해에 이를 것인가.

우리는 불신의 결말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을 것이며, 대립은 또 다른 대립을 낳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흠집 내고 죽을 때까지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다. 김민기의 ‘작은 연못’의 가사처럼 연못 속의 붕어 두 마리가 싸우다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면 그 살이 썩어 들어가고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서 결국 아무도 살 수 없는 연못이 된다. 공멸하는 것이다.

우리가 갈등과 대립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그것을 극복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수많은 난관과 장애가 있었지만 함평군은 결국 군민의 합심을 이끌어냄으로써 거점학교 사업을 성사시켜 올해부터 착공에 들어가게 된다. 중고교 거점학교 사업은 지역간 동문회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라 지자체들에서 꺼리는 사안인데 교육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의식과 교과과정 정상화라는 대의를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나서야 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격심한 갈등과 대립이 있었지만 성심과 열의를 가지고 그것을 잘 극복함으로써 더 큰 희망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함평군의 중고교 통폐합에 대한 교육부의 인센티브 400여억원은 교육감에게 재량권이 주어져 있다. 한 마디로 교육감의 의중에 따라 다른 지역의 교육사업에 사용될 수도 있는 돈이다. 하지만 장만채 교육감은 인센티브의 일부를 지원해 함평군에 추사박물관을 지어 전남의 24만여 명 학생을 포함한 대도시 학생들의 예술체험현장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밝혔는데, 이에 대해서도 일부에서 뚜렷한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고 반대 목소리를 내어 분열을 조장하고 사업을 백지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말았던 것이다.

정당한 비판은 지역발전의 자양분이 되겠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 상대를 흠집내기 위한 비판은 지역공멸을 앞당길 뿐이다. 한 가정에서 식구들이 서로를 불신하면 콩가루 집안이 되듯 함평처럼 작은 지역에서 상생하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버리면 더 이상 살아갈 길이 없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고향을 향해 눈과 귀를 세우고 있는 출향민들은 그런 분열된 모습을 보면서 더욱 더 안타까운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미우나 고우나 매일 다시 만나야 할 사람들이다. 얼굴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에서 사랑과 윤리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타인은 내가 타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져야 할 윤리적 대상이다. 이웃부터 자주 만나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고 작은 이야기부터 나누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2016년은 진심으로 소통과 화합의 원년이 되길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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