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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차 전국 여행 3]설악산 초입에 들어서다
윤재훈/시인  |  webmaster@n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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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9.12  13: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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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초입에 들어서다

아침에 일어나니 찜질방 옷장에 넣어둔 포켓용 라디오가 켜져 혼자 지지직거리며, 어디선가 날아온 전파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분명히 어젯밤에 끄고 문도 잠갔는데, 열려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밖에서 사람들 소리로 시끌시끌하였다.

나가보니 어젯밤에 도둑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옷장 문들이 전부 열려 있었다. 드라이버로 한 번만 간단하게 젖히면 그냥 열리는 그런 간단한 문이었다. 문마다 한 줄로 드라이버 자국이 나 있었다. 손님 한 분이 돈을 잃어버렸다고 신고를 해서 경찰까지 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네 지갑에는 약간의 돈과 직불카드, 라디오, 디카, 휴대폰 등이 있었는데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아마도 불쌍한 여행객이라 도둑도 배려한 것이 아닌가 위안을 하며, 어쨌든 고맙기까지 했다.

어쨌든 밖은 소란했지만 샤워를 하고 텐트와 약간의 짐들을 보내기 위해 정리를 하고 택배를 시켰다. 그리고 주인에게 부쳐달라고 부탁을 하고 길을 나섰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약간은 젊은 농부가 혼자 모를 심고 있었다. 요즘은 다 기계화로 단숨에 다 심어버리는데, 저 넓은 논을 오늘 혼자 다 심으려는지 약간은 안쓰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함평으로 귀향하여 완전 자연농으로 기계 하나 대지 않고 모든 것을 손으로 하는 정물이라는 친구가 생각이 났다.

큰 식당 화단에서 어제 해 둔 식은 밥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물도 보충을 했다. 이제 달리기만 하면 된다.

오늘도 여전히 길가에는 나비들의 사채가 즐비하다. 너무나 빨리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에 그것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길가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예쁜 나비 한 마리가 길가 하얀 선 옆에서 힘들게 날개를 퍼덕거린다. 날개가 차의 센 부력에 떠밀렸는지, 반쯤 꺾여 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날고 싶어도 이제 날 수가 없다.

   
▲ 날개가 꺾인 나비
ⓒ 윤재훈
 

벌레 한 마리 하얀 선을 향해 기어가고 있다. 그 선을 넘으면 안 되는데, 거기가 생의 하한선인데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자꾸 하얀 선을 향해 가고 있다.

가끔씩 무리지어 지나가는 차. 사람 하나 걸어가지 않은 본령을 잊는 것 같은 길. 그 인적 아닌 인적도 없는 길을 혼자 가노라니, 문득 많은 사람들이 '꿈은 크고 능력은 너무나 작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자기 그릇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일이 될 것이다.

   
▲ 너, 뭣하러 길을 떠났니!
ⓒ 윤재훈
 
   
▲ 친구, 뭣하러 왔어.
ⓒ 윤재훈
 

휴게소가 하나 보이는데 이 휴게소 여타의 다른 곳들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입구에 장승들이 길게 서 있는 폼이, 뭣인가, 제 스스로 이야기를 한껏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휴게소를 더 크게 조성하려고 하는 것인지, 옆에서는 한창 산을 깎고 있어 여행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 느긋하게, 더 느긋하게
ⓒ 윤재훈
 


전시관 문 앞부터 범상치 않은 장승들이 남근(男根)을 내세우며 위세 당당히 서 있었다. 여하한 여자나 남자는 우선 들어가기부터가 쑥스러울 것 같았다. 이층으로 올라가 안으로 들어가니 조각가 '고명규'님의 작품이라고 쓰여 있었다.

   
▲ 조각가, 고명규님
ⓒ 윤재훈
 

정말 장승들이 많았다. 수많은 장승들을 구경하고 일층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돈을 받고 있었다. 가벼운 여행자의 주머니로는 들어갈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한두 시간 구경을 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 행렬                                                                                                                ⓒ 윤재훈

 
 


   
▲ 우주인의 상형문자
ⓒ 윤재훈
 

한참을 가니 다리가 나왔다. 그 다리 위에서 잠시 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커다란 밭에 기다랗게 비닐이 놓여있는 폼이 묘한 뉘앙스를 풍기면 어떤 영감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 이제, 인제
ⓒ 윤재훈
 

인제가 가까워 옴을 알려주는 이정표 표지판을 지나고 나니 멀리 번지 점프장 팻말이 보였다.

   
  ▲ 설악산으로 접어들며
ⓒ 윤재훈
 
 

설악산이 가까워 올수록 강폭은 더욱 넓어졌다. 강가에 그럴듯한 정자가 있어 뜨락으로 올라서니 온갖 꽃들이 피어있었다. 젊은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나와 노는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니 지워달라고 했다.

현대인들은 남의 관심 안에 들거나 피사체 안에 들어가면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정자 앞에 서니 현판에는 '합강정'이라고 쓰여 있다.

   
  ▲ 설악, 그 너른 품으로
ⓒ 윤재훈
 
 


정자에 올라서 보니 강이 한눈에 보인다. 문득 지리산 입구에 서 있는 열혈남아 매천 황현 선생의 정자가 생각이 났다. 그곳은 경사는 가장 심하지만 지리산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인 중산리 입구에 서 있다.

그곳에 서면 지리산에서 흘러온 강물이 집 옆을 끼고 흘러가며, 그 강줄기들도 한눈에 잘 보인다. 여기서도 강줄기를 끼고 흘러가는 물이 잘 보인다.

그 강물 따라 치열한 비판정신과 시대정신으로 구한말 준열하게 살다간 매천 황현 선생의 '절명시' 한 귀절이 흘러온다.

난리를 겪다 보니 백두년(白頭年)이 되었구나.
몇 번이고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가물거리는 촛불이 창천(蒼天)에 비치도다.

요망한 기운이 가려서 제성(帝星)이 옮겨지니
구궐(九闕)은 침침하여 주루(晝漏)가 더디구나.
이제부터 조칙을 받을 길이 없으니
구슬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조칙에 얽히는구나.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일찍이 나라를 지탱할 조그마한 공도 없었으니
단지 인(仁)을 이룰 뿐이요, 충(忠)은 아닌 것이로다.
겨우 능히 윤곡(尹穀)을 따르는 데 그칠 뿐이요,
당시의 진동(陣東)을 밟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구나.

이 시와 함께 나는 한용운님의 '오도송'을 좋아한다.

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
一聲喝破三千界
雪裏桃花片片紅

남아란 어디메나 고향인 것을
그 몇 사람 객수[客愁]속에 길이 갇혔나
한마디 큰소리 질러 삼천 대천 세계 뒤흔드니
눈 속에 복사꽃 붉게 붉게 피네

길고 느릿하게 뻗어가는 강줄기를 바라보니 누구들 시인묵객이 되지 않은 손가.

   
  ▲ 합강정 앞 번지 점프장
ⓒ 윤재훈
 
 

그리고 바로 앞이 번지 점프장이다. 아직은 이른지 한 사람도 없다.

배도 고프고 지갑을 여니 역시 같이 배가 고프다. 여행자의 지갑은 항상 배가 고파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

   
▲ 인제, 그 노을 속에서
ⓒ 윤재훈
 

몇 푼 남지 않은 돈을 찾기 위해 마을로 갔다. 소도시의 조그만 우체국에서 돈을 찾고 막걸리를 한 병 사 가지고 돌아왔다.

합강정 옆 벤치에서 밥을 짓고 막걸리 한 잔에 취했다. 점점 흥은 도도해지는데 주위가 어둑어둑해져 왔다. 옆에 있는 휴게소로 가니 어린 여학생 하나가 허름한 불빛 아래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인제에는 24시 사우나가 없다고 했다. 낭패였다. 그러나 어쩌랴 앞으로 더 가는 수밖에.

주위는 이제 완전히 캄캄해졌다. 할 수 없이 원통을 향해 달려야 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원통은 나와 인연이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매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는 시인학교와 얼마 전부터는 만해축전을 겸해서 하고 있는데, 나는 거의 몇 년째 이 행사에 참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참가비가 매우 저렴하면서도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하기 위해 매우 크게 열리고 있다.

또 수많은 불교학 세미나와 문학 세미나가 동시에 열리고 있어, 문학과 불교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도 있다. 또한 직접 창작을 하거나, 갈수록 대학과 직장에서 강조되고 있는 논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도도 문인들로부터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밤마다 열리는 부대행사에는 청소년 및 일반인들에게 푸짐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며, 그 중간중간에 백담사에서 제공해 주는 옥수수와 감자 등은 허기를 때우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사우나는 없다. 이제는 설악산 초입인 한계리가지 또 가야만 했다. 이 일대에서는 거기뿐이 사우나가 없다고 했다.

불빛 한 점 없는 캄캄한 밤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조그만 플래시 등에 의지하고 길을 달리기에 강원도 산길은 너무나 위험했다. 앞길의 상황이 거의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만약 그 갓길에 위험한 물건들이 놓여 있거나, 떨어져 있으면 바로 사고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갓길이 없는 도로도 많아 자전거의 주행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가끔 대형차가 지나가면 낮에 보았던 잠자리나 나비처럼 자전거도 휘청휘청하며 갓길로 밀리는 것이, 홀로 가는 나그네를 더욱 파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끔씩 지나가는 승용차들의 굉음도 야간운전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계리에 도착하자 미시령과 한계령 갈림길에 큼직한 사우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가면 한계령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찾아들면 미시령이 나온다. 그리고 더 올라가 백담사 앞 용대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진부령으로 가게 된다. 한계령으로 곧장 달리면 양양이 나오고, 미시령을 타고 넘으면 설악산의 백미 울산바위를 지나 꿈같이 아름다운 속초가 나온다.

여기는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의 촬영 세트가 있어 즐거움을 하나 더 선사해 준다. 또 진부령을 타면 화진포 해수욕장으로 가는 간성(고성)에 이른다.

나는 내일 한계령을 넘어 속초로 갈 것이다. 사우나의 시설은 좋았다. 그러나 요금은 일만 원이나 되었다. 내가 65일 동안 여행하면서 가장 비싼 사우나에서 잠을 잔 셈이었다. 여행자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사우나에 들어가니 피곤하여 저녁생각도 없었다. 대형 유리창 밖으로는 설악산이 한눈에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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