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주 전라남도교육청 장학관

사람과 정서적으로 가장 친숙하게 교감할 수 있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흙을 말하겠다. 인간의 원초적 탯자리로 자궁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기 때문이다. 흙처럼 꾸밈없이 정직하고 모든 것을 포용해 주는 것도 없다. 풍수가들도 사람의 영혼은 따스한 땅을 만나면 비로소 안심하고 요동을 멈춘다고 말한다. 그래서 흙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은 자연의 섭리인 것 같다.

최근 들어 도시 근교에 주말농장이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도심 속 개발예정지에 있는 공터에는 어김없이 텃밭이 만들어지고 내 집 내 직장 우리 동네 학교에서도 텃밭을 가꾼다. 그곳에서 친환경 채소를 가꾸고 수확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잔재미가 솔솔해 보인다. 텃밭은 단순히 채소만 일구는 일반 밭과는 다르다.

흙과 대화하며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곳이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적 삶이 있는 곳으로 우리들 속에 결핍된 정과 사랑이 흠뻑 배어나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살이에서 한 발짝 비켜서 흙을 벗 삼아 찌든 영혼을 정화시키며 몸과 마음을 달래는 터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텃밭을 가꾸면서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순리나 흙의 가르침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울림을 준다.

이제 텃밭은 전원주택처럼 보통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들 주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훌륭한 학습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채소를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에는 토론이 있고 융합적으로 생각하고 환경에 대한 고민과 생명체에 대한 존귀함 같은 교육적 요소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텃밭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장소에 적합하도록 여건을 고려해 디자인해야 한다. 씨 뿌리고 관리해서 수확하는 과정까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각자의 역할 분담을 통해 협력과 배려가 필요함을 배운다. 혐오스럽게만 느껴졌던 지렁이가 기름진 땅을 일구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하고 농약을 사용하는 대신 병충해 방지에 천적을 활용할 수 있음을 공부한다.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통풍이나 햇빛, 물의 중요함을 터득하고 화학비료보다 자연 발효에 의한 퇴비와 빗물을 저장하여 사용함으로써 건강에 도움이 되는 먹거리를 만드는 지혜를 쌓아간다. 생산품을 시장에 팔면서 수확의 기쁨은 물론 유통과정과 실물시장경제를 배우고 땀 흘려 얻은 수익금을 소외된 자들을 위해 기부하게 함으로써 나눔의 정신과 봉사하는 마음을 길러준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것처럼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로서 앞으로 시장경제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될 프로슈머(producer와 consumer의 합성어)로서의 경험도 해 본다.

텃밭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경문제를 생각하고 보존을 위한 실천적 경험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후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위대한 재산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행동은 감성에 지배받고 생물학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가 물과 공기이기 때문이다.

1인당 GDP가 1400달러밖에 안 되는 부탄이 우리나라보다도 행복지수가 높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얼굴에서 행복함이 묻어나는 것은 경제적 부유도 아니고 과학기술과 정보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천혜의 자연환경으로부터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의 심각성에 대한 체감도가 미미한 실정이다. 2005년 유네스코가 지속가능발전교육(ESD, 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을 발표한 이래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정책에 지속가능발전계획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이를 위한 기반시설 중 하나로 텃밭을 만들어 교육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경제발전과 환경보전이 양립해야 하고 사회문화적 형평성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텃밭에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보통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무우 꽃 사이로 사랑을 나누며 훨훨 나는 나비 한 쌍을 보면서 여유로운 삶을 즐긴다면 행복은 배가 되지 않을까? 이제 텃밭 속의 채소 이파리 하나하나마다 교육의 이슬 꽃들이 피어나면 좋겠다. 우리들 내면 깊숙한 곳에 또아리 틀고 숨어있는 또 다른 세월호 이준석 선장을 몰아내는 힘은 교육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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