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民亂)이란 ‘포악한 정치 따위에 반대하여 백성이 일으킨 폭동이나 소요’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민란이 가장 많이 일어난 시대는 19세기다. 이 시기는 ‘민란의 시대’라 할 만큼 많은 민란이 일어났다.

백성을 위해 시행했던 제도들은 허물어져 어느 순간 지배층의 아집과 뱃속을 채우는데 이용되었고 농민층의 계층 분화가 광범하게 전개되어 향촌사회 내 계급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런 갈등은 삼정문란에 의해 첨예화 되었고, 그 결과 19세기에는 일상적인 민소(民訴)의 형태로부터 대규모 집단 농민봉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다시 민란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13일) 충남 공주에서는 전국에서 몰려온 1천여 명의 민란 군이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 유쾌한 민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치적인 이슈를 이렇게 재미나게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들은 외쳤다. ‘저마다 잘났다고 삽 질 할 텐가, 국민이 못난 거라 변명할 텐가.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가 없다. 깨어 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으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듭시다.’

‘100만 민란 프로젝트’는 그동안 영화배우 문성근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미 민란군 회원이 3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야당에서도 이 민란에 동참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천정배·이인영·박주선 최고위원, 원혜영·최문순 의원 등이 동참했다. 486 인사들의 결사체인 ‘진보행동’도 이 운동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성근씨는 이날 우금치 선언문을 통해 ‘정책들불’을 주장했다. 정책들불이란 100만 명의 민란군을 모아 스스로 대안을 모색해보는 시도다. 지난날, 서재필의 독립협회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어, 천민부터 양반까지 모두가 모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었다. 기록에 따르면 백정출신의 한 연사가 연설을 해서 큰 박수를 받고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정책들불만민공동회 형태로 소외된 이들 없이 모든 이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정책 토론회를 연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인터넷 생중계하고, 기자들을 모아서 기사를 쓰게 하고, 그 내용을 종합해서 기자회견을 할 모양이다.

그리고, 정책들불만민공동회를 정례화해서 구체화시키고 다달이 갈고 다듬고 더 많은 이들을 참여시켜 직접 민주주의 정신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야권 단일정당의 꿈과 구조, 정책, 시스템을 완성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필자는 민주당이 다음 정권을 노린다면 이 정책들불 민란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정당이 정권을 노리지 않고 시민사회단체나 가치집단, 도덕집단으로 남겠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정치판을 한번 바꾸고 싶다면 들불처럼 번지는 이 ‘민란’의 방식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

광주는 이미 ‘민란’을 시작했다. 지난 남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시민단체 연합 후보가 40% 넘는 지지율을 획득한 것 자체가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민주당의 아성에 도전하는 민란이었다. 정치개혁을 상층부의 정치 연합에 맡겨두지 않고 시민사회단체와 대중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 실천한 것이다.

더 나아가 온전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지방 정치인 손에만 지역을 맡겨두지 않고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결사, 내 아이와 후손들에게 더 이상 비겁한 삶을 살지 않게 하겠다는 유쾌한 생활정치 민란도 일어나야 한다. 제1야당인 민주당 의원이 다수인 광주·전남의회 의원들의 담합과 혈세 낭비에 대해서도 의정감시 횃불을 들어 지역정치의 뿌리가 썩지 않도록 감시의 들불도 댕겨야 한다.

정치 기득권 질서에 대해 평범한 주권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이 간절히 염원하는 정치적 질서를 요구하는 것은 이 시대의 의미 있는 ‘민란’이다. 민주광주는 역사 속에서, 늘, 정치지형과 세상을 바꾸는 선구자였다. ‘정치 1번지 광주’ 다운 새로운 정치 실험을 모색해볼 때다.

시민과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풀뿌리 지방정치의 토대를 다지고 지역민이 지역의 의제를 스스로 정해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콘서트를 해볼 때다. 밑으로부터 시작하는 ‘100만 민란 식’ 정치운동은 회색정치를 녹색정치로 바꾸는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함평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