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대상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남이 보기엔 하찮은 것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면 그것은 나의 전부가 된다. 세상 사람이 모두 관심을 쏟는 거창한 것이 아니지만 나의 시각으로 나만의 재미를 느끼는 일은 분명히 있다.

지난여름,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문학관을 만나면서 문향(文香)에 취했다. 2박3일 강원도를 돌면서 김유정문학촌·만해마을·이효석문학관·허균 허난설헌기념관·김삿갓문학관 등을 살펴본데 이어 다시 1박2일로 충청권의 문학관을 순례했다. 오장환문학관·정지용문학관 등에 발자국을 찍었다. 이들을 둘러보면서 직업병처럼 광주·전남지역의 문학관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기초 토양은 절대 뒤지지 않는데 제대로 가꾸고 키우지 못한 풍토가 너무 대비됐다.

실제로 한번 비교해 보자. 충북 옥천엔 ‘넓은 벌 동쪽 끝으로’로 시작하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초가로 된 생가가 있고 바로 옆에 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1902년 이 곳에서 태어난 그는 쉰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생애를 살면서 그는 12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섬세한 언어감각으로 빚은 시편들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관의 전시실은 여느 곳과 다르지 않다. 시인의 연보와 작품집이 전시돼 있고 한국현대시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문학지도 등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문학기행 나선 탐방객들로 항상 활기가 넘친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전시시설로 가두지 않고 체험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를 낭송할 수 있는 시설은 물론 강좌, 토론, 세미나, 문학동아리가 활동하는 생동하는 공간이다.

더 오지인 충북 보은에 있는 오장환문학관도 열린문학공간으로 제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정지용에 비해 유명세가 덜한, 그리고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에다 북으로 간 시인인 탓에 광복후 40년 동안 논의조차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그를 조명할 수 있는 문학관은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마을주민들이 앞장서 문학관을 관리하고, 문학관이 건립되기 이전부터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문학제를 개최하는 등 시인에 대한 지역민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단순히 이들 2개의 문학관을 소개했지만, 우리 지역에 이 만한 시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진에 있는 영랑생가에는 탐방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시문학사로 비교한다면 이곳 영랑 김윤식은 정지용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30년대 정지용과 함께 활동한 그는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서정을 노래해 순수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생가는 잘 보존돼 있지만 자료전시실이 갖춰지지 않았다. 이제야 내년말 완공을 목표로 시문학파기념관을 짓고 있다.
광주에 있는 용아 박용철 생가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영랑과 정지용 등과 함께 활동했으며 능력과 성과 또한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흔적은 초가와 함께 작은 시비하나에 새겨져 있을 뿐이다. 간간히 그 곳을 찾는 탐방객들은 집 만 둘러보고 아쉬움을 간직한 채 떠난다.

물론 남도에도 문학관이 있다. 조태일시문학관을 비롯 한국 최초의 여류소설가 박화성과 연극인 김우진·차범석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목포문학관, 그리고 요즘 인기몰이 중인 태백산맥 문학관 등 5개의 문학관이 문을 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문학관은 뭔가 생동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유는 그 곳이 단지 전시관 역할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했던 정지용문학관이나 오장환문학관과 달리 지역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부족한 탓이다.

자치단체의 미숙한 문화마인드에도 문제가 있다. 당장 돈이 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천박한 문화인식이 만연한 상황에서 문학관에 관심을 쏟는다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요즘 자치단체의 경쟁력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다른 자치단체보다 힘을 가진다는 건 지역발전의 원동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다. 이는 돈 한 푼 더 벌어다 준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문학관을 통해 본 전라도의 힘은 미약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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