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구체적으로 땅 갈지 않는 제 벼농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실 자연농을 하는데 밭농사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는 반면 벼농사만큼은 제일 정성이 많이 가고 어려웠습니다. 또 우리 민족이 쌀이 중요한 먹을거리인지라 벼농사에서 실패하면 밥상의 자족성(自足性)이 이루어지질 않더군요.

제일 처음, 그러니깐 98년 첫해에 승주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연속 농사삶을 시작할 때부터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삶의 스승님하고 같이 씨뿌렸는데, 투묘 모판을 어렵사리 구해서 투묘 못자리를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논둑을 야무지게 손보고 일본 가와구치 선생이 하던 방식대로 약 1.5m 간격으로 도랑을 파고 그 속으로 물이 차 있도록 했습니다. 논도 아니고 밭도 아닌 상태로 만들어 놓고 땅위를 칡잎, 갈대, 쑥, 산풀들을 베어 두텁게 깔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투묘 모판에서(못줄을 띄우고) 하나씩 뽑아 나무꼬챙이로 땅을 조금 파헤치고 일일이 하나씩 심었습니다. 아참~ 논들이 다랭이 논들인데 십여년 이상 묵혀 있어서 모내기 하기 전에 논에 있는 가시나무, 버드나무, 갈대, 쑥 등을 없애야 했습니다.

가시나무, 갈대, 쑥 등은 뿌리까지 뽑았고, 버드나무는 가장 아랫 부분을 베고 남아있는 밑둥의 껍질만 벗겨 남겨 놓았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버드나무 뿌리가 썩고 그러면 수많은 미생물들이 땅속 깊이까지 물, 공기 등을 날라주어 저절로 땅을 갈아 줄테니까요.

그일도 만만치 않았지만 십여년 묵혀논 논들이라 그런지 기름지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땅위를 칡잎, 갈대, 쑥, 산풀 등으로 덮는 것은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습니다만 첫째로 습기 보존이요, 둘째로 거름이요, 셋째로 온갖 생명들의 이부자리요 마지막으로 관행농으로 말하자면 비닐멀칭(풀들이 자라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 때문이다.

저희 농사에서 절대로 맨땅으로 놓아두는 법이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두가지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깊은 산골이다보니 계곡물을 끌어써야 했는데 계곡물이 차가워서 벼가 잘 자라지 않는것과 땅을 갈지 않으니까 떼알과 떼알사이가 넓어 물가둠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또 물이 차있지 않으니까 두더쥐님이 사방으로 헤집고 다녀 모가 누렇게 떠 말라 죽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물이 차가운 것은 물길을 빙돌려 도는 동안 따뜻하도록 하여 보았고, 물가둠은 논두렁을 늘 손보고 밟아주면서 되도록 해 보았으며, 두더쥐는 고랑마다 물이 가득차 있도록 해서 땅을 못 파헤치게 했습니다.

가을에는 멧돼지님이 오셔서 파헤치고 뒹굴다가 가시곤 하셔서 많은 곤욕을 치렀는데, 사실 멧돼지님 세계에 우리가 침범한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쨌든 그런 우여곡절 끝에 첫해 낱알 거둠도 보는 사람마다 놀랄 정도로 풍성했습니다. 몇푸대가 나왔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만 하여튼 풍년이었지요.

다음해 에는 곧 뿌리기(직파〈直播〉)를 하였습니다. 스승님은 산위에서, 저는 아랫녁 제각집 문중땅에서 따로따로 하였습니다.

먼저 이월말 부터 논에 돋아난 독새기풀이며 강아지풀 등을 뿌리와 줄기의 접점, 즉 배아점을 낫을 잘 들게 갈아서 잘라주고 못줄에 맞추어 벼 심듯이 호미로 살짝 헤집고 약 14~18알을 심었습니다.

물론 베어낸 독새기풀, 강아지풀을 논에 다시 깔아 주었구요. 그런데 벼싹이 나오면서 동시에 다른 풀님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것이었고, 잘라서 다시는 자라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독새기풀, 강아지풀들이 올라오시는 겁니다.

곧 뿌리기 하면 흩어 뿌리기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그 흩어 뿌리기는 아마 제초제로 제초하고 땅을 갈았을때 가능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가 못줄에 맞춰 곧 뿌리기를 한 것은 나중에 풀베기 좋도록 하기 위해서 이고 통풍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여튼 풀님이 올라오시는 속도는 벼싹이 올라오시는 속도를 앞질러 이미 뿌려 놓은데를 풀 매야하지, 씨 심을데를 풀 매야하지 도대체 감당이 어려웠습니다.

저희 부부는 일년 내내 풀님과 노느라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고, 매다매다 못맨 풀님들 속에서 벼싹들은 녹아버리고, 그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그해 벼농사는 평년작을 훨씬 밑도는 그야말로 내년 씨앗 종자만 건져낼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산위 스승님 농사는 작년과 비슷 했습니다. 그때 벼 씨앗은 ‘다마금’ 이었지요.

3년째 되는 해도 꼭 그렇게 보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징글징글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풀매기었습니다. 그러다가 고향으로 올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겨 승주 산골생활 3년을 정리하고 이곳 제 고향 함평으로 오게 되었지요.

함평으로 와서도 벼 곧 뿌리기를 하였습니다. 씨앗은 여전히 다마금 종자로 하였고 다른 풀들을 잡아 보려고 자운영을 뿌려 보았지요. 자운영 스스로 훌륭한 거름이 되고, 또 다른 풀들을 못 자라도록 억제하는 효과도 있어 이장님께 얻어 가을에 뿌렸습니다.

첫해는 그런대로 거두었지만, 연이어 두해는 또 풀님들께 치어 겨우 씨앗 종자만 건지게 되었지요. 땅을 갈지 않으니까 도무지 논에 물가둠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또 물 가둠이 되지 않으니까 물속에서 녹아야 할 풀님들까지 극성을 떠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았습니다 만, 결국은 이것도 안하고 저것도 안하는 무위자연의 농사에는 까마득히 멀었지요.

그러다가 동네를 떠나서 저희 문중 제각 집으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여러모로 자연농을 하기에 적합했습니다. 무엇 보다도 논이 물가둠이 되어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방식대로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벼 곧 뿌리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모판 못자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가을에 자운영 씨를 뿌리고 다음해 5월말에서 6월초정도에 자운영이 씨를 맺고 시들해질 때쯤 논에 물을 가득대고 한해살이를 마감한 독새기풀과 함께 눕혀 놓습니다.

자운영과 독새기풀 때문에 다른 풀님들은 아직 올라올 엄두를 못내고 있지요. 물에 눕혀진 자운영과 독새기풀들이 며칠 지나면 녹으면서 논은 검은 거름물이 되고 그때 모판에서 훌쩍 자란 어린모들을 못줄 띄어 심습니다.

사실 땅을 갈지 않아 아무리 물을 찰랑찰랑하게 며칠 가두었다고 하더라도 물렁한 곳 보다는 단단한 곳이 많습니다.

저희 부부가 올해까지 지난 4년간 그렇게 모내기하는 날짜를 헤아려 보니 논 440평 심는데 대충 보름이 걸렸습니다. 한포기 한포기 지극정성으로 심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 부부가 다른 분들에게 웃으면서 ‘철(흙)사장을 연마하고 있다’거나 ‘치열한 하안거(夏安居) 수행중에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손가락과 손목이 몹시 아프지요.

지난 4년간은 제 나름의 벼 자연농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해였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자리 잡았는가 하면, ‘풀은 풀로 잡고(자운영으로 다른 풀들을 잠시 억제시키고), 그 풀을 물로 잡는 것’ 이었습니다. 정말 단순해졌지요.

아마 벼 거둠(수확량)이 궁금하실 것입니다. 이곳에 와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아무것도 안했는데 해마다 콤바인 푸대로 17가마에서 18가마가 나왔습니다. 이것저것 털어내더라도 아마 15가마는 될 것입니다.

저희 부부야 자연이 주신대로 고맙게 먹겠다는 입장이고 보면 이정도 수확량 이라면 저희들 처럼 하루 두끼 통쌀(현미)잡곡밥을 잡수시는 가구 2~3가구는 함께 나누고 모실 수 있는 양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나누고 모실 수 있었고 모시고 있지요.

—다음호에 계속

※본란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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