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는 기후조건이 양호하여 가뭄도 겪지 않았고 태풍피해도 없었으니 풍작이 예상된다. 그러나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말처럼 풍년이 왔는데도 재고량 누적으로 쌀 가격이 사상 최저로 떨어진데다 수확철까지 다가오면서 폭락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년처럼 정부수매제가 지속된다면 걱정하지 않을 테지만 올해부터는 쌀 정책이 전면적으로 개편된다. 쌀 재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정부는 약정수매제를 폐지시키고 금년부터 쌀 소득 등 보전직불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농민들의 시위도 점차 격해지고 있다.
농협미곡종합처리장(RPC)을 트렉터로 봉쇄해 입ㆍ출하를 가로 막아 버리고 자식처럼 키운 벼를 갈아엎고 있다.

농민들 시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통행이 많은 도심 도로위에 나락을 쏟아붓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쌀값 하락에 강력 항의하고 있다.

쌀값 하락에 대한 항의방식은 다소 격하지만 농민들의 요구사항은 참 단순할 정도다.
농민들이 쌀 가격안정을 위해 내놓은 요구사항은 농협이 나락 한 가마(40㎏)에 대해 생산원가인 5만원을 선지급하고 가격혼란을 부추기는 저가미를 공급하지 말라는 것 등이다.

농민들의 주장은 농협이 선지급금을 5만원 가량 지급해야만 일반 RPC의 수매가도 동반 상승해 쌀값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쌀 농업에 소요되는 생산원가와 피폐해진 농촌여건을 감안할 때 농민들의 요구는 절박하기만 하다.

광주ㆍ전남 34개 농협RPC 중 나주 동강과 남평 RPC 2곳만이 선지급금 5만원을 약속하고 나머지 농협은 최종적인 나락 수매가를 5만원 이상으로 보장할 수 있지만 5만원을 먼저 지급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또 4만원(20kg) 이하의 저가미 공급을 중단하라는 요구도 일단 수용하기는 했으나 구체적으로 얼마 이하의 쌀을 저가미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농협 간 견해차 때문에 최종합의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역할은 전혀 눈에 띄질 않는다. 사회약자층인 농민들이 연일 나락을 갈아엎고 길바닥에 뿌리는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모두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쌀은 여든 여덟번의 손길을 거쳐야만 비로소 밥상에 오를 수 있다고 해서 쌀 미(米=八+八)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중앙정부는 봄부터 가을까지 뙤약볕아래서 힘들게 농사지은 나락을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농민들의 심정을 헤아려 봐야 할 것이다.
쌀 농업은 경제논리로 볼때 경쟁력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쌀 농업은 사회약자인 농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중앙정부는 농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보다 현실적인 가격안정대책을 마련하는데 적극 나서 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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