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은 61년만에 개기일식이 있었던 날이다. 옛 사람들은 일식을 재앙의 징조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국회는 아수라장 속에서 신문법, 방송법, IPTV법 등 언론관계법을 통과시켰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여권에서 말하는 언론의 선진화라던가 야권에서 주장하는 언론악법인가가 아니다.

이 법안들의 통과과정이 법치주의의 근간인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었는가이다. 특히 방송법 처리과정이 그렇다. 당시 의장(대행)이 투표종료를 선언한 시각에 투표경과를 나타내는 전광판은 '재적 294인, 재석 145인, 찬성 142인, 반대 0인, 기권 3인'으로 표시되었다. 누가 보아도 이 법안은 정족수 미달로 부결된 것이다.

그런데 곧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의장이 재투표를 실시한 것이다. 대리투표 등 다른 의혹은 차치하더라도 이것은 명백히 헌법과 법률에 정한 법안성립의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다.  

여당에서는 "재적의원 과반미달로 투표가 성립될 수 없으므로 부결이 아닌 투표불성립으로 재투표를 한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은 안건이 통과되기 위한 의결요건이지 표결자체의 불성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방송법의 투표는 회의를 열지 못하거나 투표를 마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투표가 진행된 후 투표종료를 선언한 상태에서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법안통과의 정족수에 미달하여 부결된 것이므로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따라 같은 회기 내에서 다시 표결에 붙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그것이 적법하다면서 공포와 시행절차를 밟고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역사의 오욕으로 치부되는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투표 보다도 더한 불법이다. 당시 개헌안은 203명의 국회의원 중 135명의 찬성으로 의결정족수에 1석이 모자라 부결이 선언되었다.

그런데 어떤 수학교수가 사람은 나눌 수 없는 것이고 203명의 2/3는 135.3333…이므로 의결정족수는 136명이 아니라 135명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제시하자 이를 받아들여 부결을 뒤집었다. 사사오입 개헌안 투표는 그래도 그 투표결과만을 가지고 따졌으니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방송법은 아예 그 투표결과를 무시하고 재투표를 실시했으니 55년전의 사사오입 개헌투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법질서 유린인 것이다.  

방송법의 재투표는 의사진행의 미숙이거나 실수로 빚어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재투표에 의한 법안통과의 정당성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특히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의 의결이나 투표는 다른 기관 등의 의결이나 투표의 전범이 되어야 하므로 국회의 적법절차는 다른 기관에 비하여 엄격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회가 다수의 힘이나 권력의 영향으로 그 본지에 반하여 불법적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 또한 법치주의의 실현이요 정의의 수호인 것이다.  

다행히 우리 헌법은 국회의 불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바로 대통령과 헌법재판소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헌법수호의 책무를 지우고 있다. 법질서의 확립을 강조한 대통령은 얼마 전에 '검찰 최고책임자가 될 사람이 국회인사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한 것'을 이유로 검찰총장의 내정을 철회했다.

국회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인사를 철회할 정도로 정의와 법치를 추구하는 대통령이라면 불법적인 법안을 그대로 용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총장의 내정철회는 개인의 인사에 관한 것이지만 국회의 표결은 國基에 관한 것이어서 비중으로 따지자면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이 방송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여 법치주의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면 이 법안은 재의를 거쳐 다시 공포할 기회도 있을 것이고, 정치적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헌법재판소가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이 법안을 용인한다면 불법의 시정을 사명으로 하는 헌법재판소는 그 직무를 유기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또한 앞으로 국회든 국민투표든 법령에서 정족수를 정한 모든 의결이나 투표는 힘 있는 자의 논리에 따라 정족수에 달할 때까지 재투표나 재재투표를 허용해야할지도 모른다. 이는 법치주의와 헌정질서를 심각하게 유린하는 재앙이 될 것이고, 그 역사적 책임은 법률가적 양심에 반하여 불법에 눈을 감거나 권력에 굴신하는 헌법재판관들이 모두 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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