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정부수립 이후 60여 년 동안 권력집중형 대통령중심제 헌정을 계속해 왔습니다. 4‧19 이후 1년여를 제외하고는 줄곧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제 권력집중 헌정을 끝내고 권력분산 헌정으로 옮겨가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럴 때가 이미 지났지만, 이제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역대 대통령의 비극을 이제는 끊어야 합니다. 권력분산이 유력한 방법입니다. 초대 이승만대통령부터 최근 노무현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결말은 권력집중과 유관합니다. 권력주변의 부패도, 전임 권력에 대한 후임 권력의 정치보복 또는 과도한 과거청산도 권력집중에서 기인한 바 큽니다.

둘째, 대통령이 국민통합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권력분산이 그렇게 되도록 도울 것입니다. 권력이 집중되면, 갈등도 미움도 집중됩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통합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갈등과 미움의 중심이 됐습니다. 취임 3개월 만에 ‘퇴진’구호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개선해야 국민통합이 쉬워집니다. 권력을 분산해야, 갈등도 미움도 분산됩니다.

셋째, 복잡다기한 문제는 분담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권력분산이 불가피합니다.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영웅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제기되는 문제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을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그런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역대 대통령의 성공을 막은 한 요인입니다.

그러면 권력을 어떻게 분산할 것인가.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면서도 국회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해 권력을 분산하는 것입니다. 미국식입니다.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을 금지해 권력분립을 명확히 하는 방안, 실질적인 입법권과 예산편성권을 국회가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 감사원 기능의 전부 또는 중요부분을 국회 산하에 두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습니다.

둘째,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과 책임을 분담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입니다. 흔히 프랑스식이라고 말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는 프랑스에서도 동거정부가 아닌 한 대통령제로 운영되고, 동거정부의 탄생가능성도 낮아졌습니다. 내각의 구성과 운영, 즉 행정에 대한 총리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이 검토됨직 합니다.

셋째, 대통령을 최소한의 권한만 갖는 상징적 존재로 두고, 국회와 내각이 권력을 분점하는 의원내각제입니다. 독일식입니다. 의원내각제에 따르는 정치불안의 우려는 독일방식의 건설적 불신임제로 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을 국민통합의 중심으로 삼기 위한 지혜는 자격요건과 선출방법, 임기와 권한의 조정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이상 세 가지 방법은 나름의 문제도 안고 있습니다. 첫째, 미국처럼 대통령과 국회가 권력을 분점한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결국 대통령 권력집중으로 귀착되는 것은 아닐까, 특히 미국처럼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채택한다면 권력집중 등 대통령제의 폐단이 장기화되는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둘째, 프랑스식은 행정부 우위-국회 약체화가 확연한 체제인데, 최소한 그것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잖아도 한국헌정에서는 행정부의 지나친 우위가 잘못입니다. 셋째, 독일식 의원내각제라면 대통령 직선제를 포기해야 할 텐데, 한국민의 정서가 그것을 수용하겠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을 직선한다면 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제 회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독일식 의원내각제를 진지하게 검토해 봅시다. 우리 한국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단계에 왔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래도 국민이 대통령 직선제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면, 입법부와 행정부가 권력을 분점하고 행정부 안에서도 대통령과 총리가 행정권을 분담하는 입체적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는 대안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에서는 미국식을, 대통령과 총리의 관계에서는 프랑스식을 모델로 삼아 구체안을 다듬어보는 것입니다.

대통령임기 5년 단임제는 1인 장기집권 방지라는 역사적 소임을 다했고, 이제는 부자연스러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4년 중임제를 무작정 찬성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제안해 드린 입체적 권력분산이 이루어진다면 4년 중임제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입체적 권력분산이 없는 4년 중임제는 권력집중 등 대통령제의 폐해를 장기화시킬 뿐이므로 5년 단임제보다 못합니다. 그런 4년 중임제는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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