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소비사회의 신화 그리고 휴가의 종말

이색지대(West World)

감독, 각본 : 마이클 크라이튼
주연 : 율 브리너

제작 : 1973

 

© 쾌락의 휴양지인 델로스(Delos)는 해외 관광여행 상품의 SF버전이다.

후기 자본주의 혹은 소비사회의 신화에 관한 이야기인 ‘이색지대’는 현대사회가 생산해내는 시뮬라시옹 효과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여행객들이 찾아가는 델로스(Delos;전설에서 아르테미스와 아폴로가 태어난 곳)라는 휴양지는 마치 디즈니랜드처럼 사막위에 세워진 거대한 놀이공간이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재현된 세 종류의 가상세트, 즉 폼페이를 연상시키는 고대 로마의 세계, 중세유럽, 그리고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세계는 환락과 방탕, 낭만과 로맨스, 모험과 폭력이 재현되고 소비되는 욕망충족의 장이다.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불륜을 행하고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들의 모험은 중앙통제실에 의해 언제나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희생은 항상 결정의 우선권이 없는 안드로이드의 몫이다. 다만 이곳의 안드로이드들은 진짜 인간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 얼핏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하게 보이도록 설정되어 있을 뿐이다.

© 신화의 세계에서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가슴 속 깊이 숨겨진 현대인들의 소망이다.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모드만을 빌려 만든 이 가상의 공간에 역사의 모티브가 부재한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현대의 소비자 혹은 욕망의 주체가 보기에 고대로마와 중세유럽, 미국서부세계는 (모반과 범죄는 있을지언정) ‘혁명 없는’ 완전한 세계, 즉 신화의 세계이다. 이들 신화의 세계는 중앙통제실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여행객들이 재현된 신화세계의 욕망의 주체가 됨으로써 그 자체 한 번 더 신화화된다. 역사의 옷을 걸치고 있는 안드로이드들은 시대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모방자들이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현존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종의 상품이지만 진열되는 대신 활보한다. 그들은 모델들처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 고매로마, 중세유럽, 미서부시대는 현대 미국인들에게 완전한 세계의 전형이다.

주인공은 전날 술집에서 자신의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죽었던 총잡이(율 브리너)를 이튿날 속옷차림으로 복도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어 또 다시 살해하게 되는데 그 다음날에도 그 총잡이는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이는 마치 외관상으로는 다양하고 풍요롭지만 내용물에 있어서는 그 세부까지 판에 박은 듯 찍어 나오는 자본주의의 대량복제 상품들이 불러일으키는 악몽 같은 데자뷰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 승자독식 - 가상의 세계에서도 역시 최후의 승자는 돈을 지불한 관광객의 몫이다.

자본주의 상품이자 무고한 희생자이기도 한 수많은 안드로이드들 - 이들의 이름은 기다란 숫자이다 - 을 제 시간에 수리하기 위해 흰 가운의 기술자들이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로봇수리실은 공장의 생산라인과 종합병원의 응급실의 이미지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안드로이드들은 과대증폭된 욕망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대중상품일 뿐만 아니라 원형 없이 항상 동일한 모습으로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시뮬라크르들이기도 하다. 물론 여행객들은 그러한 시뮬라크르들이 만들어 내는 유령 같은 스펙타클에 완전히 압도당한다. 이 거대한 신화세계는 주인공이 처음 총잡이 역할의 안드로이드를 살해한 후 그의 친구에게 고백하였듯이, 이 가상세계의 참여자들에게는 ‘진짜 같은’ 곳이다. 하지만 영화중반 총잡이에게 그의 친구가 실제로 살해당하자 주인공은 이곳이 ‘진짜 같은’ 곳이 아니라 ‘진짜’임을 깨닫게 된다.

© 로봇수리실은 공장의 생산라인과 종합병원의 이미지가 혼재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상세계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시스템의 오류도 더욱 증가하게 되는데, 시스템 내부의 통제와 규칙성이 붕괴될수록 가상세계의 현실성은 더 커진다. 즉 위험과 혼돈의 발생, 예측불가능성의 증가가 가상세계를 더욱 현실세계처럼 만들어간다. 프로그램의 오류가 극에 달하자 마침내 시스템은 붕괴되고 만다. 시스템이 붕괴되자 가상세계는 곧바로 현실세계가 되어 버린다. 안드로이드들은 여행객들을 모두 살해한다. 그 시간, 흰 가운을 입은 중앙통제실의 기술자들 또한 그 밀실에서 모두 질식해서 죽는다.


© 관광객인 지배자들의 범죄와 쾌락은 중앙통제실에서 세밀하게 조정된다.

안드로이드들의 반란은 시스템 에러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만 그것을 사회학적 관점으로 보자면 그들의 반란은 마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처럼 읽혀질 수 있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안전하고 합리적인 쾌락을 추구하지만 사실 그러한 규칙 자체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붕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드로이드들의 반란이 보여주는 집단적 광기와 폭력은 한 때 왕의 목을 요구하던 성난 군중의 모습과 겹쳐진다. 과거에 대해 복수를 감행하는 총잡이 로봇 또한 너무도 인간적이다. 그것이 바로 안드로이드들의 반란이 지배계급에 의해 핍박받은 자들의 계급투쟁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비록 그곳에 혁명은 없을지라도 그들의 폭력에는 일종의 윤리적 동기가 작용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안드로이드들의 실제적 반란만큼이나 여행객들의 가상화된 - 레저화된 - 범죄행각 또한 동일한 도덕의 층위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안드로이드(로봇인간)의 반란은 핍박받은 하층계급의 피의 투쟁처럼보인다. 중앙시스템이 붕괴되자 신화(의 재현)는 다시 현실이 되고 역사가 된다.

총잡이에게 추격당하는 주인공은 억울한 희생자라기보다는 마치 중죄를 범하고 경찰에게 좇기는 범죄자처럼 보인다. 영화의 끝, 주인공의 공격을 받고 불에 타 죽어가는 총잡이의 몸통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는 시뮬라크르라는 그 자신의 신비한 운명만큼이나 이 모든 상황들을 마치 꿈결처럼 느끼도록 만든다. 그의 신체로부터 이제 얼굴이 떨어져 나간다. 그것은 매일매일 마주치는 자본주의 상품들에 가위눌린 현대사회의 소비자들이 꿈꾸는, 끝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악몽 같다.

©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총잡이 로봇은 마치 복제상품 같은 자본주의의 데자부 현상이다.

저작권자 © 함평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