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와 관련 집시법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던 박재영 판사가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신뢰하고 따를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표를 썼다.

법관이자 공직자로서 정부가 하는 일에 함께 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에 있기에 현 정권과 생각이 전혀 달라 더 이상 판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 판사는 또 가진 자에게 더 주려 하는 현 정권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난을 덧붙였다.

그의 정치적 소신에 대해 섣불리 이런저런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종부세 위헌 결정, 미네르바 구속 결정 등으로 사법부가 부자들과 정권의 편만 들고 있다며 여론의 눈 밖에 난 상황에서 박 판사의 사직 소식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박 판사의 고뇌에 찬 결단에 대해 양심의 아름다운 사표라며 박수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한 사람 법관의 사퇴가 이렇듯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지금의 정국이 비정상 혹은 기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뭔가 순리대로 흘러가던 강물의 흐름이 갑자기 흐트러진 느낌이다. 아니 역류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잖아도 대한민국 민주정체의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는 말들이 분분하다. 최소한 용산참사의 진면목만 봐도 그렇다. 철거민 농성을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6명의 죽음이 발생했다는 것은 솔직히 21세기 대한민국, 아니 전 지구적 현상에 비춰 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지구환경을 보호하자는 국가협약 등 수준 높은 환경 아젠더가 글로벌 이슈가 돼있는 지식산업 시대에 철거민 축출 과정에서 떼죽음이 발생했다는 것은 아무리 그 사태의 불가피성을 감안한다 해도 전근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철거민 문제가 비극적인 사회이슈로 부상한 것은 작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서점가를 휩쓸었던 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의 일이다.

그로부터 30여년 이상이 흐른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다시 그 참상이 되풀이됐다는 것은 시대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 역류를 지켜보는 느낌은 답답하고, 허탈하기 까지 하다.

개발독재를 겪은 아시아의 제 국가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우리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가졌던 민주화의 노정이 이렇듯 쉽게 깨트려질 수 있는 연약한 것 이었는가 하는 회의를 안겨주는 까닭이다.

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민주화 운동 세대라 일컬어지며 독재의 질곡과 청춘의 고뇌를 함께 해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뒷맛은 더욱 고약하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가투의 시대를 어렵사리 가로질러 민주정부를 세웠다는 뿌듯한 감회에 젖었던 때가 엊그제인데 그 결실이 다시 70년대 개발독재 수준으로 되돌이표를 찍었다는 느낌은 삶의 한 대목이 동강나버린 듯 참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절망해선 안 될 일이다. 새벽이 지난밤으로 되돌아 갈 수 없듯이 역사에 헛수고는 없다. 역사에 대한 국민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는 까닭이다. MB정권은 이를 착각해서는 안된다. 잘 살게 해주겠다는 슬로건 하나로 30여년 세월을 거치며 민주사회를 만들어 온 국민의 의식을 뭉갤 수는 없다. 공권력 앞에서 비록 미약하게 흔들리는 촛불일지언정 이를 깔봐서는 안 된다.

역류의 방향키를 잡은 듯한 이 정권의 국정운영 양상을 보면서 필자는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 아쉬워 한 세월이 결국은 잠들었던 10년일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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