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빛깔을 닮은 장인과 만날 수 있는 감물염색

봄은 완숙한 때보다 다가오는 때가 제일이라 했다. 새로운 생명이 막 깨어나려는 기분 좋은 예감, 땅 속 깊은 곳부터 가지 끝까지 나무마다 맑은 수액이 차오르는 바로 이때가 바로 봄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야생 달래의 향긋함과 매화나무의 꽃망울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신광면 보여리로 향한다. 함평에서 영광으로 가는 국도에서 왼쪽으로 접어드니 함평에서는 가장 웅장하다는 보여리 보전마을 선돌이 보인다.

선돌을 뒤로 하고 농로 길을 따라 한참을 간다. 아무리 함평이 농촌 마을이라지만 이 길은 외져도 너무 외졌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아담한 양옥에 비닐하우스가 두동, 그리고 널따란 가건물이 반긴다.

비닐하우스 안을 보니 빨랫줄을 따라 길게 걸린 광목이 바람에 펄럭인다. 바로 이곳이 함평군 신광면 보여리에 있는 천연 염색 공방 ‘바랑’.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은 김현덕씨로 그는 아내 은경씨와 함께 공방의 운영보다는 천연염색 연구에 주로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다.

천연염색을 하는 그이지만 예상외로 그의 이력은 특이하다. 본래는 철학을 전공했단다. 지금은 광주광역시 광산구로 바뀐 광산군 송정읍 신촌동에서 1963년 태어난 그는 92년 전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다. 그리고 서양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서양미술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단다. 미술비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 전공은 철학

그가 천염염색을 하게 된 동기는 우연찮게도 미술 작품 관람을 위해 남도예술회관을 찾게 된 때부터다. 이곳에서 조선대 미대 출신의 김산하 화가의 ‘흙으로 그린 산하전’이라는 전시회를 보게 되고, 대형 캔버스에 가득 찬 ‘우리의 산야(山野)’ 등 여러 작품과 접하게 된다. 절구에 빻은 색깔 있는 흙을 강력 접착제에 나이프로 개서 그린 이 그림들은 그의 가슴을 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흙의 느낌이 너무 좋아 인테리어에 쓸 목적으로 여러 가지 색을 가진 흙을 삼베에 물들여 보았다. 이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 바로 이때부터 흙 염색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흙을 토대로 염색을 하게 된 그는 모든 식물과 곤충을 매개로 색을 내는 천연염색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제 천연염색이 그의 전공이 된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흙 염색의 황토 등 흙으로만 이루어진 염색과는 달리 옷감에 흙을 바탕에 깔고 천연의 식물들을 염색 재료를 결합시켜 보았다. 그러니 기존의 식물염색에서 내기 힘든 여러 느낌의 금색들이 자유롭게 나왔고, 빛에 따라 색의 느낌이 변하는 카멜레온 효과 등 색다른 느낌이 표출되었다.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이처럼 흙을 바탕에 깔고 천연염색을 하던 그는 언제부턴가 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미 조선시대부터 서민 작업복으로 들여 입었던 감물은 풀을 먹이거나 다림질 같은 잔손질이 필요 없고,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하다. 비를 맞거나 땀이 나도 몸에 달라붙지 않는다.

여기에 감즙이 방부제 역할을 해 땀이 묻은 채 두어도 썩지 않는다. 감 자체의 항균성 덕분에 감물 들인 천으로 옷을 지어 입으면 피부병, 특히 아토피성 피부에 효과가 있는 감에 눈을 돌린 것이다.

감물을 밑바탕으로 천연 염색재료와 결합
본디 시염(枾染)이라 불리던 감물염색은 제주도와 경상북도 청도가 유명한 곳이다. 제주의 감물염색은 감물과 발색제를 사용하며, 청도는 감물과 소금만을 사용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김현덕씨는 감물로 초벌 염색을 한 후 그 위에 천연의 염색 재료를 결합시킨다. 그만의 연구결과다.

원재료로 쓰이는 감은 8월초부터 9월초까지 채취한다. 채취한 감은 감과 같은 양의 물을 넣고 1시간 이상 유지시킨 후 곱게 갈아 베로 걸러 낸다. 이 감물을 비단에 충분히 적신 후 꼭 짜서 말리고 진한 색을 내기 위해서는 이를 반복하면 된다. 이렇게 사용하고 남는 감물은 보통은 냉장고에 보관하게 되나 그는 발효시켜 사용한다.

이렇게 감물을 바탕에 깔게 되면 색깔을 내게 되는데 모두가 천연재료이다. 청색계통에는 ‘쪽’을 사용하게 되고, 황색계통에는 ‘치자’와 회화나무의 꽃봉오리인 ‘괴화(槐花)’를 사용한다. 자색계통에는 ‘괴화’나 ‘오배자’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쪽’과 ‘소목’을 혼합해 사용한다.

갈색계열은 ‘밤껍질’, ‘호도껍질’, ‘떨감’ 등을 사용하는데 그는 주로 떨감을 사용한다. 흑색계열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먹물을 사용한다. 특히 붉은색계열은 남미에서 수입되는 코치닐을 사용한다. 코치닐은 사보텐(선인장)에 기생하는 곤충으로 우리나라 말로는 연지벌레이다. 코치닐은 암컷만을 사용하게 되고 그러기에 붉은색계열은 값이 약간 더한다.

여기에 흡착, 고착, 발색을 위해 매염처리를 하게 되는데, 특히 섬유와 염료가 결합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매염제로는 주로 백반과 함께 철장에 가장 가까운 아세트산의 일종인 목초산철을 사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감물염색 천들은 서울, 대구, 안동 등지에 주문 판매되고 있는데, 연구가 우선이라고 그는 말한다.

염색이란 느낌을 내는 것, 감물 보관소 있으면 금상첨화
그가 안내해 준 방에 들어섰다. 옷감과 함께 감물염색 옷이 들어찬 옷장이 있다. 옷장에는 생활한복과 개량한복적 이미지를 벗어난 현대적 이미지로 디자인되고 재구성된 소위 말하는 명품적인 옷들로 가득 차 있다. 그가 꼭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아내인 은경씨와는 같은 학과 선후배로 만나 지금까지 싸움 한번 하지 않은 천생연분의 만남이다. 염색 또한 은경씨는 아예 관심도 없었으나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은경씨가 모든 공정을 총괄하게 되었다.

‘바랑’대표 김현덕씨는 염색이란 단순한 색만을 내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통의 염색은 전통의 방법 그대로를 재현해 내는 사람도 필요하단다. 그렇지만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내는 일이야 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란다.

마지막으로 자신은 사용하고 난 감물을 발효시켜 사용하고 있으나 감물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함평의 가장 오지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그 같은 장인에게 행정기관의 지원의 손길이 미쳤으면 하는 바람은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연락처 : 천연감물염색 바랑 061) 323 - 4819 011 - 9451 -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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