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영욕을 함께 한다.

영예로운 역사는 자긍심을 일깨워주며, 욕된 역사는 교훈을 남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민족의 교과서다. 역사를 통해 인식하고 자각하면서 공동체 발전의 패러다임을 함께 찾아가는 통합의 경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올 8ㆍ15 경축행사는 분열 속에서 치러졌다. 8ㆍ15를 건국절의 의미로 전환시키려는 정부와 보수단체들, 광복절의 뜻을 훼손시켜선 안된다는 야당, 독립유공단체, 진보단체들이 각기 따로따로 경축행사를 치렀다. 역사라는 이름의 민족의 교과서가 둘로 찢긴 것이다.

바로 1년 전까지 아무런 갈등 없이 국민적 경축 분위기 속에서 치러왔던 8ㆍ15 행사가 이처럼 분열상을 보인 데는 우선 정부의 책임이 크다. MB정권의 지지 세력인 우익단체들이 줄곧 건국 절을 주창해온 바는 잘 알고 있지만 역사해석에 정통한 학계의 토론이나 국민적 합의 과정도 없이 8ㆍ15행사의 성격을 슬그머니 건국 60주년 기념의 의미로 전환시키려 했던 것은 역사에 대한 몽매한 태도로 여겨볼 수밖에 없다.

이승만 정권이라는 우파정부의 출범을 건국이념으로 삼겠다는 보수 정객들의 정파적 염원이 다분히 개입된 의도적인 시도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편협 된 역사인식이라 비난받지 않을 수 없다.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해 분단의 단초를 만들었다는 학계의 역사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승만 초대정부의 출범을 단지 폄하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승만 초대정부 출범의 가치가 광복의 의미까지 뒤덮으면서 존재해야 한다는 주창은 과도한 이념적 집착임에 틀림없다.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도 무시하고, 당연히 해방조국을 위해 갖은 시련과 고난을 견디며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독립운동에 나섰던 순국선열의 거룩한 헌신마저 장막 안에 가두면서 마치 신생국가라도 되듯이 건국 60년의 의미만을 강조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역사는 단절을 두려워해야 한다. 특히 다른 나라의 침탈과 억압으로 굴곡진 단절의 사슬을 끊고 해방된 조국을 이뤄낸 극복의 역사기록은 결코 훼손돼선 안 될 민족사의 금자탑이다. 이 때문에 외국의 침입에 의한 단절의 수난을 겪은 제 민족들은 한 결 같이 해방된 그날을 국가 제일의 경축일로 삼고 있다.

미국은 1776년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그리고 프랑스는 1944년 8월 25일을 파리 해방 기념일로 삼고 있다. 첫 해방 기념일 날 프랑스공화국 정부를 수립 선포한 초대 대통령 드골은 그날 이렇게 말했다.

“공화국은 중단되지 않는다. 비시정권은 무효이며 존재하지 않는다.”

침탈에 따른 단절과 굴종의 역사가 얼마나 엄혹한 성찰을 요구하는 국가의 교훈인지를 국민 앞에 선언한 셈이다.

참여정부의 이념성을 가혹하게 비판하면서도 국민적 합의에 의해 치러왔던 8ㆍ15 광복행사 마저 우파의 가치관대로 변화를 시도하는 MB정권의 과도한 이념성을 국민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권이 결코 역사의 판관이나 해설자가 될 수는 없다.

정권은 짧지만 역사는 길다는 불변의 진리를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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