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6월 서울 중심부에서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하루도 쉬지 않고 2개월 이상 이어졌다. 참가인원도 날마다 수천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 기간과 규모만으로도 기록적이었다.

그 현장에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이 만큼의 시위를 쇠고기 문제가 촉발하고 여중생과 젊은 엄마들이 시동했다는 것, 시위의 대부분은 투쟁적이지 않고 오히려 축제처럼 전개됐다는 것 등등…그런 변화들을 나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대한민국의 헌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시위에는 ‘이명박 퇴진’ 피켓도 등장했다. 이대통령이 취임하고 석 달도 안 된 시점부터였다. 시위가 계속되던 기간에 이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16%대까지 떨어졌다. 이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대통령과 쇠고기 협상을 포함한 그의 논쟁적 정책들만의 문제일까. 다른 구조적 문제도 내재된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것들을 의문했다.

촛불시위의 현장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 항쟁의 현장이기도 했다.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결합한 것이 현행헌법이다. 바로 그 현장이 2008년에는 현행 대통령제를 되묻는 현장이 됐다. 촛불 위에는 대통령제라는 제도 자체도 함께 올랐다. 나는 그렇게 직감했다.

전임 노무현대통령도 일정 시점이 지난 뒤부터 다수 국민과 줄곧 갈등했다. 이대통령은 그 시점이 앞당겨졌고, 갈등이 심해졌다. 이들 두 대통령의 좌절을 다음 대통령은 겪지 않을 것인가. 겪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런 판단의 배경은 네 가지다. 첫째, 영웅적 지도자의 시대는 끝났다. 둘째, 정부가 부딪치는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셋째,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끝이 없을 만큼 높아졌다. 넷째, 현행 헌법은 대통령에게 거의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면서, 대통령이 잘못해도 임기 중에는 책임을 묻기 어렵게 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영웅적이지 못한 지도자가 대통령이 된다. 그는 집중된 권력을 한 손에 쥔다. 그는 복잡한 문제들을 동시에 풀어야 하고, 또 그러려고 시도한다. 그것은 매우 어렵다. 하물며 국민의 높은 기대를 충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 지지도는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래도 국민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국민의 불행이며 국가의 비극이다. 그것을 해결할 때가 됐다. 그러자면 헌정제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도 책임을 묻기는 어렵게 만든 현행 제도를 계속 유지해도 좋을지, 따져봐야 한다.

개헌을 준비할 때가 됐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3년 전부터 개헌을 논의해 왔다. 최근에는 국회에도 개헌을 연구하는 모임이 생겼다. 한나라당 이주영의원, 자유선진당 이상민의원과 내가 공동대표를 맡은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그것이다. 무려 180여명의 여야 의원이 회원으로 가입한 국회내 최대 연구모임이다.

우리 연구회는 개헌의 초보적 준비에 착수했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개헌에 관한 여러 의견을 듣고 이를 국민께 알리는 일이다. 내부 세미나와 공개 토론회가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몇 단계를 거치며 작업을 진척시켜 나가려 한다.

정치권에는 현시점의 개헌논의에 반대하는 기류도 있다. 여당 쪽은 이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이나 임기문제를 걱정한다. 야당 쪽은 모종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을까 경계한다.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여당의 걱정은 불필요하다. 임기는 하루도 단축하지 않도록 할 수 있고, 조기 레임덕은 개헌준비 때문에 오지는 않을 것이다. 야당의 경계는 지나치다. 합의개헌 이외의 개헌방식은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지금 우리 연구회가 하는 것은 정치세력간의 개헌논의가 아니다. 그것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 개헌을 위한 정치적 결단은 내년 하반기쯤 최단기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졸속개헌도, 늑장개헌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준비해 가다가 내년 상반기쯤 국회차원의 논의기구로 옮겨가면 된다.

각 정당이 개헌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정부형태에 대해서는 각 정당이 구체적 당론 결정을 유보하면 어떨지, 조심스레 여쭙고 싶다. 각 정당이 정부형태에 대한 당론을 정하면, 그때부터 개헌논의는 순수성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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