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하지도 않은 '독도' 발언에 대한 '무리한 집착'

6일 오전부터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세 번째 정상회담이 공동 기자회견과 오찬을 끝으로 모두 종료됐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양국 간의 현안뿐 아니라 독도나 금강산 등 복잡한 외교적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 시점에 열린 것이어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청와대는 유난히 국민적 주목도가 높은 독도 문제에 대해선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같은 말도 그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외교의 기본원칙'조차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부시는 '독도'를 입에 담지 않았다

우선 많은 언론이 주목했던 부시 대통령의 "나도 독도를 안다(I know Tokdo island)"는 발언을 보자. 일본과 첨예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독도 문제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다케시마'나 '리앙쿠르 락스'가 아닌 '독도'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부시 대통령은 '독도'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부시 대통령과 함께 정상회담 장소인 본관 2층 집현실로 향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1층과 2층 계단 사이 벽에 걸린 한반도 지도를 보고 독도를 지목하며 "이것이 독도입니다(This is Tokdo island)"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그럽습니까(Is that)?"라고 반문했을 뿐이었다. 곧 부시 대통령은 "알겠습니다(I know)"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두 정상은 곧 나란히 정상회담 장소로 향했다.

문제는 두 정상의 생생한 표정과 발언을 취재해야 할 대표 취재기자(풀 기자)들이 경호문제 때문에 15m이상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한 취재기자는 이 대통령이 사용한 '독도(Tokdo island)'라는 발언이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잘못 인지했다. 다른 취재기자는 부시 대통령의 "알겠습니다(I know)"라는 발언을 들었다.

직후 풀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 두 가지 발언, 즉 이 대통령의 "이것이 독도입니다(This is Tokdo island)"라는 표현과 부시 대통령의 "알겠습니다(I know)"라는 표현이 "나도 독도를 안다(I know Tokdo island)"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으로 합쳐진 셈이다. 녹음자료 등을 확인한 취재기자들은 곧바로 풀기사를 수정했고, 각 언론사들도 이미 발행된 기사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정리되는 듯 했다.

'해프닝'을 다시 키운 이동관 대변인…무조건 '유리한 대로'?

그러나 이날 오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의 '독도' 발언에 대한 집착을 엿보였다. 이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독도'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부시 대통령은 독도를 알고 있다고 대충 얘기한 것"이라고 뭉뚱그렸다.

"정확한 확인을 해 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이 이어지자 이 대변인은 "나는 못 들었지만, 통역이 들었다. '아이 노(I know)'라는 언급은 있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독도를 소개한 이 대통령을 향해 부시 대통령이 "그렇습니까?"라고 반문한 뒤 "알겠습니다"라고 응답한 대목을 그야말로 '대충' 뒤섞은 셈이었다.

이 대변인은 "솔직히 말하면 섬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그러니까 '이즈 댓?'이라고 한 다음에 '알고 있다'고 한 것으로 정리해 달라"고도 했다.

게다가 이 대변인은 독도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에 부시 대통령이 '납득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가 곧바로 이를 번복하기까지 했다.

이 대변인은 "오찬 회담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 문제의 역사정 배경을 설명하자 부시 대통령은 '상당히 납득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선 부시 대통령이 독도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손을 들어 준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당장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상당히 납득하는 듯한 반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 대변인은 잠시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은 뒤 "납득하는 반응이었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면서 "'진지하게 경청했다'는 것으로 바꿔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의 구체적인 발언을 소개해 달라"는 거듭된 요청에도 "한미 양국 외에도 다른 제3자(일본)가 연관돼 있는 만큼 구체적 표현은 밝히지 않겠다"며 비껴 갔다. 기자들 사이에선 허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외교가 국내정치 수단인가?

물론 출범 초반 일본과 유난히 돈독한 관계를 과시해 왔던 청와대로서 독도 문제가 불거진 상황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부시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독도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준다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덜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부시 대통령의 언급을 두고 '무조건' 한국 정부 쪽에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사실과 현저히 다른 내용을 언론에 공개해 정치적 효과를 누리려는 이러한 '꼼수'는 외교관계에선, 특히 양국 정상이 만나는 중요한 행사에선 대단히 위험하다.

부시 대통령은 방한을 앞두고 미국 현지에서 열린 한국 언론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직접 A4용지를 들고 기자들에게 독도 문제와 관련된 쟁점들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미국 지명위원회의 '영유권 명기파문'에 대해 직접 '원상회복'을 지시하기도 한 부시 대통령이다. 부시 대통령이 '독도'의 명칭을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이동관 대변인의 해석에도 무게를 싣기 힘든 정황이다.

그렇다면 왜 부시 대통령은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라는 반응만을 보였을까. 바로 일본의 입장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 관계뿐 아니라 미일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대단한 부담이라는 얘기다.

애매한 표현이라면 애매한 그대로, 사실은 사실대로,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닌 대로 전하고 밝히는 게 불필요한 논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특히 독도와 같이 국내 여론은 물론이고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외교적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독도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독도는 한미가 아닌 한일문제"라고 답하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말을 뒤섞거나 슬그머니 무리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청와대 측의 이러한 행태는 결국 이 대통령이 보여 준 최소한의 '신중함'마저 퇴색시킨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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