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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 구출 대작전, 이제부터 시작!
송성영  |  webmaster@n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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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6.27  1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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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아저씨!"

   
  ▲ 우리 동네 개울가에서 발견한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25일, 시간을 다투는 방송 원고에 코를 박아놓고 머리통을 쥐어짜고 있는데 선우 녀석이 헐떡거리며 사랑방 앞에 우뚝 다가왔다.

"빨리 와 보세요."
"뭔디 그려 임마, 바뻐 죽겠는디."
"저기요, 아줌마가 빨리 와 보시래요."
"어떤 아줌마가! 바쁘다니께 짜식이."
"영주 엄마가요."
"왜?"
"개울에요, 새가 있어요, 큰 새가, 부엉이나 올빼미인가 그래요, 빨리 와 봐요."

   
  ▲ 둥구나무 개울가로 앞장서 뛰어 가는 선우 녀석
   

   
▲ 개울가 물풀 숲에 웅크리고 있는 수리부엉이
   
작은 다리 밑에 웅크리고 있는 부엉이

두 눈을 휘둥그레진 선우 녀석은 밑도 끝도 없이 날지 못하는 큰 새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켜놓은 채 카메라를 챙겨들고 급히 따라 나섰다. 동네 앞 저만치 둥구나무 아래 영주와 민영이 영주엄마, 영주네 식구가 보였다. 공주에 살고 있는 선우 사촌형인 민욱이 녀석도 보였다.

개울과 둥구나무를 이어주는 작은 다리 밑에 눈이 큰 새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언뜻 부엉이나 올빼미로 보였다. 몸집이 큰 것을 보면 부엉이에 가까웠다. 노랗게 맑은 눈빛을 가진 녀석이었다. 발톱도 날카로웠다. 부리도 부리부리하게 생겼다.

"괜찮다 괜찮아, 헤치지 않을게. 거기 가만 있어봐, 어디가 아픈겨."

   
  ▲ 긴 날개를 펼쳐 날았지만 2m도 채 날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녀석이 1m가 넘는 긴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2m도 채 날지 못했다. 개울가 물풀 사이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려보았다. 경계의 눈빛 같기도 하고 두려움의 눈빛 같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의 눈은 너무 맑았다. 전혀 살기가 없어 보였다. 겁에 질렸을 것인데 겁에 질려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맑기만 했다.

녀석의 눈을 한참 들여 보고나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카 아 아 쉬…."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경계의 소리가 분명했다. 하지만 녀석은 부리나 발톱으로 내 손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힘도 없어 보였다.

녀석의 부리부리한 부리에 물리면 손가락이 온전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발톱은 큰 토끼 한 마리쯤은 산 채로 낚아챌 만큼 크고 날카로웠다. 그 발톱이 내 손목이라도 움켜쥐면 뼈 사이로 깊이 박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맑은 눈빛에 취해서 그런지 이상하리 만큼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맨손으로 녀석의 깃털을 가볍게 쓰다듬어가며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외상은 없어 보였다. 알 품는 닭이 그렇듯이 한동안 알을 품고 있었는지 녀석의 가슴팍에 깃털이 죄 빠져있었다.

왼손을 조심스럽게 날개 죽지 부위로 가져갔다. 오른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날개 죽지에 손을 넣으려는 순간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날개를 힘들게 퍼덕거리며 저만치 다리 밑으로 내뺐다.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걸 보면 농약에 중독됐거나 쥐약 먹은 쥐를 먹었거나 작년 겨울 내내 온 산을 헤집고 다녔던 사냥꾼들이 설쳐대는 바람에 먹이가 없어 영양실조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우리집 작은아이 인상이에게 카메라를 맡겨놓고 다리 밑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녀석을 그대로 두다가는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누군가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닭날개 잡듯 조심스럽게 날개 죽지를 잡았다. 녀석이 몇 차례 요동을 쳤다. 힘이 없는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개울 밖으로 데려 나오자 두 살짜리 민영이가 바싹 다가와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나나 민영이나 겁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 수리부엉이의 양 날개를 잡고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데려갔다.
   

날짐승은 날아다니기 때문에 서식지 보호 안 한다고?
일단 집으로 데리고 가서 효소를 먹이기로 했다. 재작년 봄, 농약 먹은 것으로 판단된 다 죽어가는 백로에게 효소를 먹여 날려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애비야 니가 한 생명 살렸다')

아이들이 쪼르르 뒤 따라왔다. 나는 동네 골목대장처럼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방치해 놓은 큼직한 닭장을 꺼내왔다. 농약 먹은 백로가 힘차게 날아가기 전에 효소를 마시고 잠시 쉬었다 간 그 닭장이었다.

한 잔 정도 남아있는 으름 효소를 먹였다. 녀석이 숟가락을 공격적으로 물었다. 그 틈으로 효소를 밀어넣었지만 반 이상을 흘렸다. 반복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백로와 경우가 다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한 숟가락도 채 마시지 않은 효소의 효능을 믿을 수만은 없었다.

방송을 통해 알게 된 대전동물병원 이일범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의 인상착의를 말해 줬더니 대번에 수리부엉이가 틀림없다고 말했다. 인터넷에 수리부엉이를 입력해 보니 틀림없이 천연기념물 제324-2호인 수리부엉이였다.

이 팀장은 일단 공주시 문화재 담당과에 전화를 해서 치료를 받도록 권했다. 그 곳에 지정된 동물병원에 입원시켜 치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주시에 전화를 걸었더니 교환에서 문화관광과인지 문화예술과인지를 바꿔 주었다. 그곳에서 다시 문화재 관리소를 연결해 주었다.

이러저러 해서 이러저러 하니 데려가 치료해 달라고 했더니 한두 시간 지나서 찾아온다고 했다. 시청 공무원들이 미덥지 않아 공주대 특수동물과에 전화를 걸었다. 그 곳에서는 아직 보호할 만한 공간이 없다고 한다. 현재 야생동물 보호소를 마련하고 있는데 올 11월부터 개장한다고 했다. 결국 공주시 문화재 관리소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 임시 방편으로 닭장에 넣어 놓고 효소를 먹였다.
   
문화재 직원들을 기다리며 컴퓨터 앞에 코를 박고 있는데 영주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동네 할머니에게 물으니 앞산에 부엉이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수십년 전부터,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그 곳에서 부엉이들이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할머니 말대로라면 마을 앞산은 분명 부엉이 서식지였다.

하지만 수리부엉이의 오랜 서식지로 보이는 그 앞산 주변은 호남고속철도가 놓여질 예정지였다. 내년 겨울이면 공사가 착공된다고 한다. 공사가 시작되면 수리부엉이 서식지는 사라질 것이었다. 더 이상 부엉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수리부엉이 먹이를 검색하고 뒷밭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가 맨손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모양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리부엉이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부터 가슴이 콩콩 뛰었다.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녀석의 맑은 눈을 보면서 뭔가 도움을 줘야할 것만 같은 마음이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랬다. 수리부엉이의 눈빛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연의 힘이었다. 그것은 살생이나 파괴의 힘이 아니라 생명의 힘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힘이었다. 한 밤중 부엉이의 울음소리는 평화 그 자체가 아니던가. 나는 그 평화로운 힘, 생명의 힘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할머니 말대로 앞산이 수리부엉이 서식지라면 특별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었다. 서식지를 보존해야 할 것이었다. 그것은 단지 수리부엉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수리부엉이를 통해 생명의 힘과 평화를 얻게 되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에 전화를 했더니 중년 사내가 쉰 목소리로 답을 줬다.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서식지 보호와 개발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리부엉이 서식지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데 날아다니는 짐승이기에 개발과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개발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날아다니는 짐승이기에 어디론가 날아가서 서식지를 옮기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는 답변이었다. 그는 수리부엉이가 왜 수백년, 수십년 동안 우리 동네 앞산을 구태여 서식지로 삼고 있는지 알 턱이 없을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잘 알았다고 해놓고 전화를 끊었다.

수리부엉이 구출 작전, 이제부터 시작이다!

   
▲ 우리동네 부엉산에 오랫동안 부엉이가 살아왔다고 증언하고 있는 아랫집 유씨 할아버지
   
공주시청에 전화한 지 두 시간쯤 지나서 문화재 관리소 직원 두 명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두터운 장갑까지 챙겨왔지만 수리부엉이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에 질려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내 손으로 그들이 가지고 온 철망에 수리부엉이를 옮겨 놓았다.

철망에 옮겨 놓기 전에 두 날개를 펼쳐 보았다. 1m는 족히 넘어 보였다. 막상 수리부엉이를 떠나보내려 하니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아쉬웠다. 수리 부엉이를 떠나 보내는 아이들 눈빛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시청직원들을 믿어야 했다. 시청직원들에게 수리부엉이가 치료를 받고 완쾌 되면 다시 녀석의 보금자리로 되돌려보낼 것을 약속 받았다.

수리부엉이를 문화재 관리과 직원 손에 맡겨 보내고 나서 아랫집 유씨 할아버지를 만났다. 유씨 할아버지 말로는 어려서부터 부엉이가 살고 있는 앞산을 '부엉산'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부엉이가 새끼를 까고 거기서 항시 부엉부엉 울었지, 내가 어려서 동네 어른들 한티도 들었는디, 옛날에도 앞산에 부엉이가 살었디야, 그래서 부엉산이라 한 거 같어, 그 놈들이 새끼를 낳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겨."

동네 노인들 말을 종합해 보면 분명 우리 동네 앞산은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서식지가 분명했다.

녀석이 병원에서 기운을 챙기고 있는지 내내 궁금했다. 시간을 다투는 방송 원고를 쓰다가 틈틈이 공주시 지정 조류 전문 동물병원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공주시 문화재 관리과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오후 3시 반쯤부터 30~40분 간격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전화번호를 다시 문의하기 위해 문화재 관리과에 전화를 했는데 통화 중이었다.

오후 6시 30쯤에 다시 문화재 관리과에 전화를 걸었다. 계속 통화 중이었던 전화가 이어졌다. 다행히 문화재 관리과 직원이 퇴근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번호를 물었다. 처음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람이 잘못 알려줬거나 내가 잘못 기록했다.

"수리부엉이 신고한 사람인데요, 어디가 아픈가요?"

공주시청 지정 동물병원에서는 수리부엉이를 오후에 받았기 때문에 검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내일 초음파 검사나 혈액검사 등을 비롯한 무슨무슨 검사를 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농약 먹었는지 그런 검사도 하나요?"
"예, 다 검사 합니다."
"그럼 내일 결과가 나오겠네요."
"검사가 다 끝나면 내일 모레 쯤에 결과가 나올 거예요."
"그 녀석 내일 모레까지 괜찮을까요?"
"지금 상태로 보아서는 이상 없을 것 같은데요."

완쾌 되어 돌아온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녀석은 조만간 호남고속철도 공사와 함께 서식지를 송두리째 잃게 될 것이었다.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서식지를 보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이 된다면 광우병 소고기뿐만 아니라 쥐약도 먹을 수 있다고 설쳐댈 저 개발지상주의자들이 미쳐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무엇이라 답할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저들이 무어라 답하거나 말거나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구출 대작전을 펼쳐 나갈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 우리동네 '부엉산' 수리부엉이 서식지 구출작전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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