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부터 무척이나 각 잡는군'

유럽의 성당을 구경하다 보면 규모나 예술성 면에서 흠칫 놀라게 된다. 왕궁이나 다른 현대 건축물들도 보는 사람의 입을 벌어지게 하지만, 성당은 더 큰 감탄을 만드는 것 같다. 기독교가 유럽인의 정신 세계를 지배한 걸로 본다면 그들이 수천 년간 축적해 온 건축, 예술 등 모든 지식을 성당을 통해 구현하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계 모든 성당의 '지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로마 시내 안에 존재하는 독자적 국가인 바티칸 시국 소속이다. 베드로는 알다시피 예수의 12제자 중 수제자이자 로마 가톨릭의 제1대 교황이기도 하다.

따라서 베드로는 예수에 버금가는 존재다. 역대 교황 256명 중 베드로를 제외하고 아무도 '베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정한 교황은 없다. 법으로 금지된 건 아니지만 '감히 어떻게 그 이름을…'이라 하는 관습 때문이라고 한다. 건축이며 예술 양식이 발전한 오늘날까지 베드로 대성당보다 더 큰 규모의 성당을 볼 수 없는 이유도 베드로의 절대적 권위 때문이 아닐까.

4월의 끝자락, 이탈리아에 도착한 나는 베드로 대성당을 보기 위해 '시시하게' 국경을 넘어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갔다. 성당에 가려면 베드로 광장을 거쳐야 한다. 성당 앞마당인 셈인데 이렇게 큰 앞마당은 처음 봤다. 광장 둘레를 수많은 기둥이 빈틈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감싸고 있고 기둥 위에는 하나씩 사람 형상의 조각이 얹혀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애려는 디자인이다. 난 '입구부터 무척이나 각 잡는군'이라 생각했다.

그 성실함에 난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긴 줄을 선 끝에 겨우 내부로 들어갔다. 성당 내부도 화려함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왕궁이 사치스러운 장식물들로 권위를 내세우려고 한다면 이 성당은 규모로, 예술로 권위를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제단. 역대 교황들의 무덤 위에 있는 제단은 성당 안에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존재다. 제단을 감싸는 네 기둥은 직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담쟁이넝쿨처럼 꼬불꼬불하며 화려하게 치장해 있다. 높이는 또 얼마나 높은가. 가까이 서면 고개를 뒤로 젖혀 꼭대기를 바라봐야 하고 그 위엔 조각상들이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며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혀를 내두르게 하는 건 내벽과 돔을 장식하는 모자이크다. 멀리서 보면 붓으로 그린 그림 같은데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엄지손톱만한 돌 조각들을 하나하나 붙여 놓은 걸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성당은 프레스코화를 그려 넣는데 이 성당은 그런 '평범한' 방식으론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이 넓은 벽면과 돔을 모자이크로! 그렇다고 정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림, 글자까지 모두 모자이크의 손길로 완성했다. 그 옛날 '아시바'를 세우고 이 높은 돔 꼭대기까지 올라가 돌조각 하나 하나를 붙이며 그림을 완성했을 그들을 떠올리니, 그 예술적 성실함(혹은 집요함?)에 난 그만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

이 성당엔 권위의 표현이 넘쳐 흐른다. 모든 것은 크고 화려하다. 성당 앞마당도 광장이 될 만큼 넓은 데다 내부 역시 모든 게 넓고 높고 화려하다. 성당 안의 조각상들도 박물관에서 본 것보다 훨씬 역동적인 느낌이다.

종교의 권위를 표현하는 그들의 의도를 나쁘게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본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텔레비전의 국제뉴스에 등장하는 교황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노인이 감당하기 버거워 보이는 의상을 두르고 손을 흔드는 교황의 모습이, 치장물들로 권위를 내세우려는 모든 시도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 삐딱한 무신론자에겐 그리 멋져 보이지 않는다.

베드로 대성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제단도, 모자이크도 아니다. 제단 아래 있는 역대 교황들(베드로를 포함해)의 무덤이다. 제단 아래로 내려가자 교황들의 시신이 안치된 공간이 나타났다. 얼마 못 가 통로를 가로 막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비는 지점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이었다.

가장 최근에 선종한 분이어서 그런지 인기가 많았다. 그의 무덤 앞에는 꽃다발, 편지 등이 수북이 쌓여 있고 관광객과 신자들이 무덤 앞에 뒤엉켜 있었다. 몇몇 신자들은 그의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으며, 한 성인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를 애도하고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6년간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이끈 분이다. 당연히 지금 20~30대 신자들에겐 평생 함께 살아온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으리라(실제로 교황은 'Pope', 즉 아버지란 뜻이다). 그는 슬라브계로는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의 교황이 되었고 실제로도 가장 아래, 밑바닥부터 시작해 한단계 한단계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 소탈하고 검소하며 사회의 약자들을 많이 보살펴 유달리 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의 무덤도 다른 역대 교황들의 무덤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달랑 십자가 하나와 그의 이름이 전부다.

다른 교황들의 무덤이 더욱 화려할수록 아무 것도 없는 그의 무덤이 더 빛이 난다. 권위란 바로 이런 것이겠지. 종교든 국가든 개인의 차원이든 권위는 낮은 곳으로 임할수록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라는 나의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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