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소개해드릴 철학자 최진석의 글은 <본질, 생각 그리고 정치>입니다. 지난 4월 중앙일보 칼럼으로 발표된 글이기도 합니다. 정치 이외에도 각자의 다양한 분야에서 본질에 대한 화두를 생각해보면 어떨지요? 이번 한 주도 새말새몸짓으로, 늘 한 걸음 더 나은 삶으로 건너가시길 바랍니다. 

철학자 최진석의 
철학자 최진석의 

 

화약은 기술이고, 화학은 과학이다. 중국은 화약을 가장 먼저 만든 나라다. 인류 문명의 진화 수준이 기술에 도달했을 때는 중국이 천하제일이었다. 문명이 과학의 단계로 도약하자, 사유 수준이 기술의 단계에 머물러 있던 중국은 과학의 높이에서 나오는 서양의 생산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편전쟁에서 패배했다.

기술을 발휘할 때의 생각은 경험과 감각에 많이 의존하여 기능적이지만, 과학을 발휘할 때의 생각은 경험과 감각을 벗어나서 추상적이고, 원리에 접근하기 때문에 본질적이다. 과학과 철학의 높이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전술 국가에서 벗어나 전략 국가로 올라설 수 있다. 전술적 사고는 기술적 단계의 사고와 닮아 기능만으로 충분해서 본질을 조금 소홀히 하기도 한다. 전략적 사고는 과학적 단계의 사고와 닮아 본질을 잡고 기능을 부린다.

기술적이건 과학적이건, 사고 능력은 그대로 사회에 투사된다. 우리나라는 대의제라는 통치구조 원리를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다. 대의제는 정당을 핵심으로 해서 운영된다. 정당이 제대로가 아니면 대의제 민주주의는 제대로이기 어렵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나 유권자들은 모두 권력 쟁취라는 기능을 정치 행위로 간주하는 것 같다. 제3세력이 등장해서 성공한 적이 없다고 평가할 때도, 가장 큰 이유는 집권하지 못했다는 점을 든다. 집권하지 못한 정치 행위는 다 실패로 규정한다. 좋은 대학 못 가면 다 실패한 학생으로 치부하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정당은 모두 ‘대통령 제조공장’으로 전락했다. 비전이나 꿈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정의나 신뢰나 염치 등을 논하면 바보 취급을 받을 정도다. 비전이나 꿈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따지지도 않고, 마땅한 대통령 후보가 없으면 어디서든 빌려 온다. 대통령을 제조하기 불편해지면 당을 쪼개고 붙이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70년 이상의 민주주의 정당 역사가 있지만, 지금 존재하는 정당 가운데서 10년이 채 안 된 정의당이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국민의힘은 고작 3년 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은 8년 되었다. 꿈과 비전을 사수하려는 본질적 의지는 오래가지만, 권력을 쟁취하려는 기능적인 욕망으로 뭉친 곳에는 원래 의리가 없다. 본질을 버리고 기능적 권력만 취하려는 정치 결사체가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당 내부 선거를 할 때, 외부 여론조사를 포함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당원도 아닌 외부인의 의견을 포함하면 당원이 가지는 배타적 자부심이 그만큼 약화할 뿐이다. 당선 가능성이라는 기능을 크게 보니, 당원의 본질적 권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보다 더 우스운 일도 있다. 당 내부 선거를 할 때마다 선거를 위해 이미 정해진 선거 규정을 고치는 일이다. 선거용으로 기존의 규정(법)을 고쳐 다시 만든다면, 그것은 규정(법)도 아니다. 적용하기 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규정(법)을 정당한 규정(법)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정당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모두 권력이라는 기능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혁명이라고까지 자평하는 소위 민주화 운동도 최종적으로는 권력 쟁취만을 꿈꾸는 반동적 행태로 귀결되었다. 본질에 충실한 민주화 운동이라면, 민주에 대한 감수성이 커졌을 것이다. 기능에 충실하면, 어쩔 수 없이 민주에 대한 감수성보다는 권력에 대한 감수성이 클 수밖에 없다.

5·18 왜곡 특별법이 한 예다. ‘민주’라는 본질보다는 역사적 사실의 왜곡을 처벌하려는 기능적 의무감이 우선시되었다. 민주화 운동이나 정당이나 마찬가지다. 본질을 지키면 민주나 정치가 살지만, 본질을 버리고 기능적인 권력만 탐하면 민주나 정치는 사라진다. 대한민국에는 정치가 사라졌다. 정치 기술자들만 득실거리고, 정작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막장에 이르고 국민은 외통수에 걸렸다. 모두 사고의 한계에 갇힌 것이다. 제대로 된 정당도 만들지 못하면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잘되기를 기대하고,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 87 체제가 어떻다느니, 지배구조가 어떻다느니 하고 논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지 모른다. 어떤 논의도 모두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고야 말 것이다.

이제라도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의 가장 기초적인 본질은 신뢰를 바탕으로 말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선 거짓말하는 버릇을 고치는 것부터 소박하게 출발하는 것이 큰 승리를 예약하는 일일지 모른다. 어머니 젖을 빨 때의 그 원초적인 마음으로 시작하면 정당다운 정당이 나올 것이고, 정당다운 정당이 나오면 대의제 민주주의가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막장과 외통수에 걸린 정치를 살려 전략 국가로 도약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엉터리여도 최종적인 승리는 그래도 본질을 지킨 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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