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철 조선대 외래교수
조성철 조선대 외래교수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이 최근 1심 재판부의 각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고 한다. 2심에서만큼은 국민의 존엄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존중하는 판결을 내려지길 기대한다.

앞선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양호)는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다.

일본의 법정에서나 나올 법한 이 판결이 우리나라의 법정에서 우리나라 판사에 의해 나왔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다.

구체적으로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이라며 배상청구 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피해 배상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었다.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청구권 협정은 불법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 협정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이 협상 과정에서도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피해 배상을 부인했기 때문에 위자료 청구권이 협정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또 “일제의 식민 지배, 징용의 불법성은 단지 국내법적인 해석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일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자신들의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였다는 자료가 없고 국제법적으로도 그 불법성이 인정된 자료가 없다”며 “당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제국주의 시대에 강대국의 약소국 병합이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국제사회에 실정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지 오래임에도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판결이었다.

이에 대해선 사법부 내에서도 “일제시대 강제노역에 따른 손해배상 문제는 그 이론적 근거인 불법 행위가 성립하는지를 따지는 것이므로 당연히 국내법에 따라야 한다”며 “내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어떤 사람을 강제로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행위를 하면, 그것이 국내법이건 국제법이건 법질서에 위반된다는 점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일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의 눈부신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언급한 대목은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보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궤를 같이하는 망언에 가깝다.

아울러 “손해배상 청구가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 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 우리의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져 헌법상의 ‘안전보장’을 훼손한다”는 견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과는 전혀 무관한 판사 개인의 사견일 따름이었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일본 정부의 기존 주장을 그대로 베낀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번 판결은 한 판사의 양심적 소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부정한 일탈 그 자체였다”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에서도 “일본이 주장해온 논리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너무나 많고, 일본 측 변호사가 할 법한 표현도 있다”고 꼬집었다.

대한민국 사법부에 이런 판사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니 해당 판사의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수십만명이 몰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피해자들은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1심 재판부를 겨냥해 “이번 판결로 강제징용자 783만명과 그 가족 및 국민을 억울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2심에서만큼은 이 같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없도록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조성철 조선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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