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텅 빈 들길을 스쳐간다

나는 그 바람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나뭇잎은 그 바람을 느끼며 바람에 화답(和答)해주고 푸른 물들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듯 대답하며 대지(大地)는 평온한 꿈을 꾸듯 다시 잠들어간다.

이 세상에는 삶의 이유와 목적도 모르는 채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다. 이들에게도 삶에 대한 의문이 곧 답(答)이 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그 자체만 놓고 따져도 이미 무엇 때문에 사느냐, 하는 방법이며 설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자기 자신에 대한 궁극적(窮極的)인 목적이나 지향 (志向)의식에 이르지 못한 소박한 사람들은 이처럼 아무 의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하나의 유희(遊戱) 이며, 그저 베풀어지는 것이고, 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은, 말하자면 동. 식물에서 느끼는 것과 비숫한 것이다.

물론 일에 의혹을 품으며 반추(反芻)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우리가. 왜 숨을 쉬는지 생명을 지속시켜 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왜 살아야 하는지 묻지 않으며 어른들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거나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삶의 뜻을 따져보려고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보람에 차 있거나,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때는 삶의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물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하겠지만 적어도 일생에 한 번쯤은 삶에 대하여 의혹을 품을 때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어떠어떠한 것 때문이다” 고 생각 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저 뜻도 모르고 흘러 보낸 낙엽이 과연 왜 흘러만 가고 있는지를 깨닫듯이 나는 왜 계속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이와 상대적으로 우리는 고통(苦痛)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내일을 믿지 말고. 내일을 기다리지도 말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내일에 속으며 살아간다. 잡으려고 가까이가면 저만큼 달아나 버리는 무지개와 같은 내일에 참으로 많은 기대를 걸어놓고 살아간다. 그리하여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오늘 살아야 할 삶을 내일로 미룬다.

그러나 속지 말자.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내일은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오늘 뿐이다. 오늘은 그렇게 소망(所望) 하였던 어제의 내일이고, 내일은 시간이 지나면 오늘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마치 서로 얽혀 잘 짜여진 옷감처럼 우리는 늘 다른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낯익은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우면서도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무언가 산뜻한 기분을 안겨 주는 자체가 삶의 뒤안길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쓰레기를 태울 때의 불꽃 내음이나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을 태우는 냄새와 같으며 진한 커피냄새를 물씬 풍기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나뭇가지가 타는 냄새는 마치 고향의 아름답던 추억을 말하여 주는 것과 같으며, 부뚜막의 구수한 냄새 또한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煙氣)가 전하여 주는 아름다운 속삭임과 같으며, 논과 밭 들녘에서 구워 먹던 감자 고구마 냄새는 모두가 고향을 그리워하게 하는 어머니의 품안처럼 포근하고, 어딘가 모르게 부드럽고 감미로운 것은 모두가 알찬 하루와 자기 자신에 대한 삶의 의욕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으며, 삶에 대하여 의혹을 품었을 때가 아니었을까,

머나먼, 삶의 뒤안길의 언덕위에서 나는 단 한 치의 땅도 찾지 못하였다. 한때는 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도, 한때는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던 사람도, 언제 가는 웃으며 다시 만날 날이 오듯 변해버린 사람을 탓 하지 말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도 말고, 얼어붙은 동토(凍土)의 땅에서 매섭게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그냥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그 봄날이 오듯이 의도적으로 멀리하지 않아도 스치고 떠날 사람은 자연히 멀어지게 되고, 아등바등 매달지 않아도 내 옆에 남을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알아서 내 옆에 남아준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주고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 내 시간 내 마음 다 쏟고 상처 받으면서 다시 오지 않을 꽃 같은 시간을 힘들게 보낼 필요는 없다. 비바람불어 흙탕물 뒤집어쓴다고 꽃이 아니던가, 다음에 내릴 비가 다 씻어 준다. 그 아무리 잘났다고 하여도 높고 높은 하늘에서 보면 모두가 다 똑 같은 하찮은 생물(生物)일뿐. 나보다 못난 사람 짓밟지 말고 나보다 잘난 사람 시기하며 질투하지 않으면, 그냥그대로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외로움과 그리움을 담아 청순(淸純)하고 단아(端雅)한 모습으로 피어난 달 밝은 봄(春) 밤의 목련 꽃(花)처럼 담장 넘어 살포시 미소 지으며 삶의 무게(重量)를 전하여 주는 아름다운 삶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신선하고도 쓴 냄새를 풍기고 하늘은 티 없이 맑고, 때 이른 개나리가 말라버린 덤불 속에서 꽃을 피우듯이 늙어 간다는 것도, 아름다운 삶의 하나이며 자신의 목표(目標)를 향해 힘찬 노력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며, 이 세상에서 무언가 해보겠다는 것도, 단 하나의 삶이며, 그 삶은 다른 어느 누구의 삶보다도 무언가 다르다고 말 할 수 있는 귀중한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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