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총선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국이 속속 선거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각 정당은 그 첫 작품으로 이번 선거에 내보낼 후보자들을 가려내는 공천작업에 마지막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제1당을 꿈꾸는 한나라당은 어제까지 245개 전국 지역 선거구 전체의 후보자를 확정지었다. 민주당도 120곳 넘게 출전자를 결정했다.
 
이번 공천과정에서 양 당은 다 같이 한 목소리로 개혁공천을 부르짖으며 칼바람을 일으켰다. 덕분에 영남에서 절대 강세를 보이는 한나라당이나 호남을 맹주로 삼은 민주당의 중진 또는 이른바 실력자 상당수가 첫 관문에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실제로 한나라당이 완료한 공천 심사결과 기존 현역의원 128명 중 50명이 교체돼 현역 교체율이 39.0%에 달했다. 이는 탄핵 역풍을 피하기 위해 과감한 현역 물갈이를 시도했던 17대 총선 당시의 현역의원 교체율 36.4%보다 2.6% 포인트 가량 높아진 것이다. 사상 최대의 물갈이 폭이다. 국민은 한때나마 카타르시스의 희열을 맛봤다.
 
열세에 놓인 민주당도 현역의원 대폭 교체를 통해 난관 타개를 시도했다. 초반엔 공천심사위원장인 '박재승의 칼날공천'으로 어느 정도 기대를 충족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인 각 계파간 이해관계가 갈등으로 증폭되다가 곳에 따라 구시대의 인물이 다시 등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물론 공천에서 대폭 물갈이를 한다고 해서 정치가 저절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역대 총선 때마다 각 정당은 표면적으로 공천 물갈이에 나섰다. 그 결과 초선의원 당선 비율이 13대 56.5%, 14대 39.8%, 15대 45.8%, 16대 40.7%, 17대 56.5%에 이르렀다. 하지만 정치의 품질이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개원만 하면 의정단상에서 멱살잡이와 욕설이 난무하는, 구태가 재연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빼내는 물' 못지않게 어떤 물을 새로 채워야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국민에게 던지고 있다. 그동안 총선 때마다 되풀이된 물갈이에도 정치판이 달라지지 않은 것은 정치권이 국민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우선 위기만 넘기고 보자는 식으로 대처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는 미봉책으로 선거에 나설 타자의 얼굴만 살짝 바꾼 것이다.
 
더구나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은 선거를 불과 20여일 앞두고 최종 후보를 단상 위에 올려 놓았다. 우리를 대신해 일해줄 지역의 일꾼을 뽑는데, 주인이 그들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할 시간을 사실상 놓쳐버린 것이다. 공천작업에 워낙 관심이 쏠리다 보니, 주객이 전도돼 '이런 사람이 있으니 알아서 뽑아라'라는 식으로 여기까지 와 버렸다. 인물이나 정책검증없이 공천자만 남는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전개과정으로 볼때 이번 선거도 정치권에 맡겨서는 정치의 선진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결국 유권자가 정신 차리고 나서야 한다. 후보들의 전력(前歷)과 행적(行蹟) 등을 철저히 검증하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는 자구책(自救策)이기도 하다. 정치개혁과 선진화를 이끌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를 지킬 만한 국가관과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지, 여러모로 따져 본 뒤에 투표장으로 가야한다.
 
특히 호남에서는 민주당 공천을 받자마자 선거가 끝난 것으로 착각하는 후보들도 눈에 띄는 모양이다. 참으로 오만한 자세다. 공천 승자(勝者)들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국가관을 이제 유권자가 '칼같이' 따지고 심판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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