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엉뚱한 상상력이 대박을 터뜨린다

홍콩 해변에서 희한하게 생긴 아파트를 보았다. 37층 건물 한가운데에 6개 층 정도에 해당하는 직사각형 구멍을 내놓은 아파트였다. 오피스 건물도 아니고 사람 사는 아파트를 왜 저런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다가 상상도 못할 엉뚱하고,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뒷산 계곡에 용이 살고 있는데, 이 건물을 지으면 용이 바다 쪽으로 날아가는 길을 막게 되어서, 용이 날아가는 바로 그 자리에 구멍을 내어 길을 터주었다는 것이다. 매우 엉뚱한 생각이다. 이 엉뚱한 생각의 결과는 대박으로 나타났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상서로운 동물인 용이 한복판을 뚫고 지나다니는 아파트라는 이유로 가장 값비싼 아파트가 되었고, 인기스타들까지 여러 명 살게 되어 더욱 유명한 아파트가 되었다고 한다.

모든 발명은 엉뚱한 생각이 씨앗

엉뚱한 생각이 세상을 바꾼 사례는 부지기수다. 사람도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비행기를 낳았다. 번갯불과 같은 것을 방안에 매달아 놓을 수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전등을 만들었다. 2,200년 전 이집트에서 지구가 둥글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에라토스테네스란 사람은 지구의 둘레까지 쟀다. 놀랍게도 오늘날 잰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이처럼 망상에 가까운 상상력은 인류 문명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인류가 가장 혐오하는 동물인 쥐를 미키 마우스라는 친근한 캐릭터로 변모시켜서 떼돈을 번 사람이 월트 디즈니이다. 쥐는 생존력과 번식력이 동물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인류가 멸망해도 쥐는 살아남아 지구를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때는 지구가 아니라 ‘쥐구’가 되겠지.) 뱀은 방에서 애완용으로 기르기도 하지만 쥐는 사람과 친해지기 힘든 동물이다. 미키 마우스를 보면 너무 귀여워서 쥐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쥐 이야기를 하자니 1960년대 중반쯤 시골 초등학교 시절 정말 웃지 못할 일이 생각난다. 학교에서 가정환경을 조사하는데, 자기 집에서 키우는 소, 돼지, 닭, 오리가 몇 마리인지 써내도록 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자기 집에 사는 쥐가 몇 마리인지 써내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나는 많게 잡아서 100마리 정도 써냈던 것 같은데, 그 뒤 우리 집에서 1,000마리도 넘을 것 같은 엄청난 쥐떼를 보고 질겁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커다란 상자 속에 든 미제 쥐약을 가져왔는데, 모양도, 색깔도, 냄새도 틀림없는 과자처럼 보였다. 이것을 마루 아래에 놓으니 금방 쥐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정신없이 회식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제 쥐약을 먹은 쥐들은 비실비실 할 뿐 죽지는 않아서 한국 쥐가 미국 쥐보다 더 강인한 게 아닌가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디즈니는 혐오성 동물인 쥐를 활용한 엉뚱한 생각으로 대박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디즈니는 “인류의 상상력이 남아 있는 한 디즈니랜드는 완성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엉뚱한 발상을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

싸이의 빅히트도 엉뚱함 때문

자연, 자본, 노동력이라는 생산의 3요소 없이도 엉뚱한 상상력 하나만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해리포터>는 보여주었다. 책과 영화, 캐릭터 상품 등 해리포터 시리즈가 1997년부터 10년간 창출한 부가가치는 무려 300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저자인 조앤 K. 롤링이 처음 이 소설을 쓸 때만 해도 그녀는 가난한 싱글맘에 불과했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난방비를 댈 수 없어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변두리 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눈치를 봐가며 쓴 책이 이 소설이다. 여러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으나 내용이 황당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다 2천 파운드(약 4백만원)를 받고 원고를 넘긴 게 제1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다. 그 후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7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말춤을 춰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았던 가수 싸이도 엉뚱함의 소산이다.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한 이래 하늘 아래 순수 창조는 없다. 모두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모방하고, 재해석, 재활용하고, 종합, 편집한 것이 발명품이고 신제품이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편집되는 것’이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 유명한 말춤과 시건방춤도 기존의 다양한 안무를 재활용하여 편집하고, 여기에 싸이만의 엉뚱하고도 독특한 안무를 더하여 엄청난 히트 상품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싸이의 창의성이다.

현대는 노하우(know-how)를 넘어서 노후(know-who)의 시대다. 자기 혼자 모든 것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대신 그것을 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파악해서 필요에 따라 활용하면 된다. 빠른 속도로 벤치마킹하고 거기에 나만의 것을 가미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훌륭한 창의성이다.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움막을 짓고 사방에 ‘창의성’이라 다닥다닥 붙여 놓고 도를 닦듯이 창의성 수련에 들어갔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창의성이 날로 늘어나 창의성 박사가 되었을까?

몇 해 전 종편채널의 개그프로에 ‘연습생만 17년’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산중에 들어가 합숙하면서 개그를 수련한지 어언 17년, 그들은 개그 박사가 되었을까? 개그가 늘기는커녕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어두운 여러 행태를 이 코너는 신랄하게 풍자했다. 마찬가지로 ‘창의성, 창의성’ 한다고 해서 창의성이 늘어날 리 없다. 빌 게이츠가 서울대 강연에서 “창의성은 광범위한 지식에서 나온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수많은 경험이 창의성의 원천이다. 동서고금의 경험을 가장 효과적으로 맛볼 수 있는 것이 책을 읽는 것이다. 빌 게이츠도 엄청난 독서를 통해 창의성을 키웠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며 “하버드 졸업장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책 읽는 습관”이라고 말했다.

지식보다 소중한 것은 상상력

모든 문명은 상상력과 창의성의 소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한 이야기라서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창의성이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 가까운 곳에 널려 있다. 오래전 어떤 손톱깎이 회사에서 손톱깎이에다 병따개를 붙여서 만들었다.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물건의 조합을 생각한 것은 엉뚱함이다. 이 신제품은 우리나라와 동남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별 것 아닌 색다른 생각이 큰돈이 되기도 한다. (반면 문화가 다른 유럽에서는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외면받았다고 한다.) 진 토닉에 빨간 체리를 하나 얹으면 보기도 좋고 입맛도 돋운다. 작은 아이디어가 사물의 가치를 높인다. 아이디어란 빨간 체리 같은 것이 아닐까?

국회도서관장 재임 때 독도에 국회도서관의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연결할 수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답이 나왔다. 인공위성으로 연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본토와 독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국회도서관 독도 분관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로써 독도에서 전자도서 80만 권과 각종 학술지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독도에 대한민국의 지식과 정보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큰 상징적 효과를 얻었다. 다시 말하면 독도가 대한민국의 ‘지식영토’임을 천명하는 효과를 본 것이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망원경 없는 천문대와 같다.” 정호승 시인의 말이다. 당신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커다란 망원경을 가지고 ‘무지개다리’를 타고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쳐보기 바란다. 지루했던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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