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벌써 30년 가까이 된 일인데도 처음으로 저자가 되었을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표지에 내 이름이 박혀 있는 책에 사인을 하여 지인들에게 건네주던 때의 기쁨은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 만세를 부를 때의 몇십 배나 되는 것 같았다.

과거에는 특별한 사람만이 저서를 냈지만 지금은 출판의 대중화에 따라 평범한 사람도 책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책을 낸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책을 내면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책을 낸다고 생각하면 두렵고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되는 기쁨을 상상하면서 자신만의 저서를 집필해보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니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책으로 만들어내면 엄청난 개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집필 과정에서 깊은 사유를 하게 되고 잡다한 경험과 지식 정보가 정리 정돈되기 때문이다. 책을 쓰고 나면 성취감과 자신감이 충만되어 한층 업그레이드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키면 당연히 주변의 대접이 달라진다.

책으로 묶어내지 않은 경험은 휘발되어 날아가 버린다. 책이란 화석과도 같이 소멸되지 않고 보존된다. 헤밍웨이는 경험한 모든 것을 글로 옮겼다고 말했다. 일간신문에 쓰는 글은 수명이 하루이고, 주간지는 일주일, 월간지는 한 달인데 비해 책의 수명은 반영구적이다.

수많은 사람이 경쟁하는 사회에서 저서를 가진 자는 당연히 돋보이게 마련이다. 취직 전선이든 승진 전선이든, 창업 전선이든, 결혼 전선이든, 또는 어떠한 전선에서든 결정권자는 많은 대상자들을 향해 “너는 어떤 사람이냐? 너의 능력을 당장 증명해봐”라고 요구한다. 다른 사람들이 긴 말로 설명할 때 당신은 저서를 내밀면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써서 책을 만들어야 할까? 막연하여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한때 글 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고 저서를 열권 가까이 낸 나도 항상 이 문제로 고민한다. 우선 책을 쓰겠다는 결심이 먼저이다. 그 다음엔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프로 작가들도 준비가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준비에만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우선 테마를 정해야 하는데 테마는 가까운 데서 찾는 것이 좋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관심 있는 일, 보고 겪었던 일 등 무궁무진하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문학 속에 핀 꽃들>이란 책을 냈는데 그 시발점이 참고할 만하다. 그는 어린 딸이 꽃만 보면 “아빠, 무슨 꽃이야?”라고 묻는데 대답을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야생화 공부를 시작하여 점점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그는 소설 속에 수많은 꽃이 등장하는 데 착안하여 문학과 꽃이라는 고상한 소재를 합성하여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개성 있는 책을 엮어냈다. 우리 동네의 한 미혼 여성은 전국의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하는 책을 만들었는데, 젊은이들에게 꽤 인기가 있을 것 같았다. 여행 경험도 훌륭한 책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여행지를 소개하는 의미도 있지만 자기만의 기록으로도 괜찮은 소재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우선 집필 준비용 노트를 마련하여 틈틈이 생각나는 대로 메모를 하고 스크랩북을 만들어 신문·잡지에서 관련 기사를 잘라 모으면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한 이래 하늘 아래 순수한 창조는 없다. 책을 쓰는 데는 기억 되살리기, 편집과 종합, 연결과 체계화, 상상력이 중요하다. 늘 고민하고 천착하면 좋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게 된다. 집필도 한꺼번에 하려고 하면 너무 힘드니 틈틈이 써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좋은 책이 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보와 재미가 있어야 읽는 맛이 난다. 어설픈 이론보다는 개인적 경험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기술하는 것이 쓰기도 편하고 읽기도 좋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목사님의 설교나 스님의 설법도 교리 해설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훨씬 효과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그래, 다 좋은 말인데 너무 바빠서 도저히 책 같은 것은 쓸 수가 없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쁘니까 쓸 수 있는 것이다. 바쁘지 않은 자는 쓰고 싶어도 쓸 ‘거리’가 없어서 못쓴다. 나중에 바쁘지 않을 때 쓰려면 아파 누워 있을 때 쓰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바쁠 때 준비해서 바쁠 때 써야 한다. 최소한 쓸 준비라도 바쁠 때 해놓아야 한다.

한가할 때 내가 쓴 책을 넘겨보면 내 인생의 나이테를 보는 것처럼 감회가 새롭다. 세월이 흐르니 결국 남는 것은 책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인생이 소멸되지만 책으로 남으면 후손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남는다. 칠순이나 팔순 잔치 때 수건 대신 자서전을 선물하면 주위의 대접이 달라지는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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