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 전 관악구청장

구청장 시절 분기별 조회 때 직원들에게 주제발표를 시키고 즉석 투표를 하여 순위를 매기도록 했는데, 내용의 우수성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곤 했다. 매번 웃음을 많이 이끌어낸 발표자가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을 보고 웃음의 힘을 실감했던 경험이 있다.

어느 날 거실 소파에 누워서 식탁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잠깐 와보라 했더니 “날개 달린 나비가 꽃에게 와야지”라고 일리 있는 유머로 응수를 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옆으로 가서 볼에 기습 뽀뽀를 했더니 손을 내젓는다. 이때 한마디. “나비가 꽃에게 뽀뽀 한 번 하는데, 꽃이 왜 이래?”

정당 대변인 시절에 기자들과 반주를 곁들인 화기애애한 저녁 자리에서 한 기자가 “나중에 천당과 지옥 중 어디에 갈 것 같아요?”라고 물었다. 나의 대답. “나는 지옥으로 가고 싶어요. 왜냐하면 기자 여러분을 또 만나고 싶으니까.” 일제히 폭소가 터졌다.

평범한 말도 장소에 따라서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학문에 힘쓰라. 학문을 넓혀라. 학문을 닦아라.’ 이 말이 대학 화장실 칸 안에 붙여져 있다고 상상해보라. 웃기지 않은가. 중앙대 화장실 소변기 앞에는 ‘중앙인은 중앙에!’라는 재치 있는 경구가 웃음을 자아내며 바른 행동을 유도한다.

유머와 웃음이 행복을 부른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헤아릴 수 없는 몸과 마음의 고통을 주었지만, 치유제를 내렸으니 그것이 바로 웃음이다. 유머와 웃음은 인생의 필수 요소이다. 드라마와 영화, 광고도 웃음 코드가 성패를 좌우하고 재계에서는 ‘펀(fun)경영’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웃으면 복이 와요’ 1970년대 인기 코미디 프로의 이름인데, 웃음의 효능에 대해 이보다 잘 나타내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웃음과 유머가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유머 감각을 기르고 늘 웃음 속에서 살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이다.

개그 프로가 참 많다. 가수는 노래 한 곡으로 평생을 벌어먹고 훈장까지 받은 사람도 있지만, 개그는 아이디어 내놓기도 힘들지만 한 번 써먹은 것을 재탕도 할 수 없다. 개콘(개그 콘서트)을 비롯하여 코빅(코미디 빅리그), 코빠(코미디에 빠지다),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 개투(개그 투나잇), 하땅사(하늘도 웃고 땅도 웃고 사람도 웃고) 등 개그 프로그램의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온다. TV에서 이런 개그 프로를 볼 때마다 개그맨들이 저 코너 하나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까지 든다. 그러나 개그 프로를 보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물을 웃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유머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사회에서나 집에서나 유머를 섞어서 대화하는 연습을 늘 하면 놀랍도록 유머 감각이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신문기자 시절 주변의 권유에 따라 정치 유머집을 출간한 적도 있다. 제법 인기를 끌어서 매스컴을 타고 인기 TV 토크쇼인 ‘주병진 쇼’까지 불려 나갔다. 이후 최초의 TV 시사 인형극인 MBC ‘단소리 쓴소리’의 작가로 활동했다. 대통령, 총리, 장관, 정당 대표 등 권력자들의 인형을 등장시켜 사회적 이슈를 재미있게 풍자하는 프로였는데, 한동안 시청률이 꽤 높았다.

정당 대변인 때 딱딱한 정책 설명이나 상대 당에 대한 비판도 항상 유머와 해학, 풍자를 버무려 내놓았기 때문에 늘 화제에 오르고 TV의 ‘돌발영상’ ‘팝콘영상’ 등 인기 코너와 신문의 ‘말 말 말’ 코너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했다.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상대 쪽에서 우리 후보의 여자관계 어쩌구 저쩌구 하는 시시콜콜한 공격을 해왔다. 기자실 마이크를 잡고 “우리 후보의 여자관계는 어머니와 부인, 딸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기자들은 킥킥 웃으며 그냥 넘어가 주었다. 유머의 힘으로 논란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웃음을 만드는 화장품은 없다

 

10여 년 전 기자들이 주요 이슈에 대해 김한길 의원의 속마음에 대해 물었다. 난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자세히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유머를 섞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더니 사이버 공간에서 한동안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머를 구사하여 모두 웃는데 한 사람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썰렁한 태도로 “왜 그러냐?”고 따지고 달려드는 경우가 있다. 잘 못 알아들을 때도 외딴 섬처럼 고립돼 있지 말고 우선 따라 웃고 봐야 한다. 웃음이 웃음을 부른다. 유머는 듣는 사람의 반응이 성패를 좌우한다. 액션도 얻어맞는 사람이 멋있게 나자빠져야 주인공의 연기가 사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반응 잘하는 것도 굉장한 능력이다.

방송인 이금희가 롱런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반응을 잘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녀는 언제나 출연자의 말에 200% 공감하는 표정을 짓는다. 우스운 이야기를 들으면 배꼽을 잡는 시늉을 하고,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출연자도 말이 잘 나올 뿐 아니라 방송 자체가 살아난다. 나는 이금희의 방송을 볼 때면 출연자보다도 그녀의 표정을 더 주의 깊게 본다. 반응 잘하는 것을 배우려고 애쓰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는다.

대인관계에서 늘 웃는 얼굴을 하려고 애쓰는데도 잘 안 된다. 사진을 찍을 때 분명히 웃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면 표정이 굳어 있기 일쑤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늘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많이 해도 아직 부족하기만 하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우선 유머부터 구사하여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웃음은 최고의 예술이다. 아무리 좋은 화장품이라 해도 웃음을 만들지 못한다. 웃어야 얼굴의 보석(이빨)이 빛난다. 어떤 사람은 참 잘생긴 얼굴인데 웃지를 않으니 얼굴이 아깝다. 반면 어떤 사람은 평범한 얼굴인데 방긋방긋 잘 웃으니 참 예쁘게 보인다. 미인보다 소인(笑人)이 낫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나 보다. 미소의 에너지가 얼마나 대단하면 ‘살인미소’라는 말까지 생겨났을지 생각해보라.

웃는 시늉만 내도 뇌가 웃는다

오래전 일이다. 한 카페의 여주인이 미인형인데, 웃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 아예 웃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아무리 웃기려 해도 웃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몸짓으로는 친절하면서도 웃음은 짓지 않는, 묘한 분위기의 여인이었다. 우리 일행은 ‘기어코 웃기고 가자’고 결의 아닌 결의를 하고서 별 농담을 다 던져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사장님. 우리는 사장님 웃을 때까지 또 오기로 했으니 다음번에는 한 번 웃어 주세요.” 이렇게까지 말해도 결코 웃음만은 보여주지 않았다. 나중에 가보니 카페는 문을 닫고 없었다.

앞으로 기대수명을 100살이라고 치면, 잠자는 시간 33 년, 먹는 시간 12 년이다. 하루 10분씩 웃는다 해도 평생에 겨우 8 개월 동안 웃고 산다는 계산이 나온다. 내가 웃어야 세상이 웃는다. 더 많이, 억지로라도 웃자. 웃는 시늉만 내도 뇌는 진짜 웃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밤늦게 사무실에 남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심심한데, 언제 들어와?” 바로 답을 넣었다. “조금만 기다려. 소금 사가지고 갈게.” 다시 문자가 왔다. “ㅎㅎ ㅋㅋ ㅌ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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