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에서는 조선의 민족의식을 꺾고 그들의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조선자전차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본 최고의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엄복동의 등장으로 일본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가고 계속되는 무패행진으로 ‘민족 영웅’으로 떠오른 그의 존재에 조선 전역은 들긇기 시작한다.

때맞춰 애국단의 활약까지 거세지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엄복동의 우승을 막고 조선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최후의 자전차 대회를 개최한다.

일제 강점기,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던 한일전이 시작된다.

2019년 모두가 기억해야 할 가슴벅찬 역사, 이천만 조선의 희망이 된 이름 ‘엄복동’을 스크린에서 만났다.

1913년 4월 매일신보에서는 “십만 관객이 박수 응원하는 가운데 엄복동과 황수복은 항상 다른 선수보다 앞서 나가다가 다른 선수가 쫓아옴을 보고 더욱 용맹을 내어 넒은 경주장을 겨우 이십이분에 스무번을 돌아 우리가 애독자 제군과 기다리고 바라던 전조선대경주회의 명예 있는 일등은 마침내 엄복동군에게 떨어지고 황수복도 삼등을 점령하여 다정다한한 십만 동포의 박수갈채하는 가운데에 감사한 눈물로 동포의 다대한 열성을 사례하며...”라고 써있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소중한 역사인 3.1운동의 정신을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통해 스크린에 펼쳐냈다. 결국 전 세계의 역사를 바꿨던 것은 총, 칼이 아닌 민족의 자긍심과 투지였듯이, 자전차의 두 바퀴만으로 조선의 민족성을 드높인 자전차왕 ‘엄복동’의 무패행진과 그를 응원한 이천만 조선의 함성은 삼일절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의미있는 영화로 다가왔다.

영화<자전차왕 엄복동>은 여러 가지 비판을 불러왔다. 대표적인 것은 고증오류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고종은 고증 오류에 가깝다. 고종의 퇴임은 1907년이며 순종이 뒤를 이어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재위하였다. 엄복동의 우승은 1913년부터이니 고종과 백성 엄복동은 영화에서처험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 엄복동의 첫 우승한 그날밤 고종으로부터 하사품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조선왕실이 없는 상황에서 이 장면 또한 고증오류이다.

이 외에도 준비안된 영화로 애국이냐 매국이냐 하는 분분한 비판도 가세하고 있다. 또한 흥행에도 참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차왕 ‘엄복동’은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담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천만관객을 모으는 영화들도 있지만 흥행으로 영화를 판단하기에는 자전차왕 ‘엄복동’은 역사적인 인물로 실존인물이다. 또한 굉장히 암울했던 조선의 상황에 희망, 그리고 자부심을 주는데에 많은 역할을 했던 실존인물이라는 점에서 한번은 영화를 찾아서 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영화는 많은 관계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의 비판으로 영화를 폄하하는 것은 영화에 함께 한 사람들의 노력을 허탈하게 만든다.

따라서 영화<자전차왕 김복동>은 영화제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보았으면 한다.

또한 주인공인 실존인물 엄복동에 대해 아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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