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배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대아청과 기획팀장)

배추값이 지난해부터 바닥세를 이어오고 있다. 소비부진 탓에 김장용 가을배추가 워낙 많이 남은 데다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로 겨울배추 생산량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저온창고에 들어간 물량도 만만치 않아 당분간 시세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다.

배추 수급안정을 위해 정부는 지금까지 7만여t을 폐기·비축했고 생산농민과 산지유통인 역시 자율폐기에 동참했다. 이만큼 시장격리가 이뤄지면 경락값이 조금이라도 오를 법한데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봄배추 작황도 좋은 것으로 파악돼 우려를 더한다. 20년 넘게 도매법인에서 일해온 필자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상황이다. 이러한 위기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우선 생산량조사에 오류가 있거나 짧은 기간에 수요가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의심이 든다. 과거에는 배추가 다양한 형태로 밥상에 올랐다. 포기김치는 물론이고 겉절이와 배춧국에도 쓰였다. 쌈을 싸 먹을 때도 배추가 소비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쌈과 같은 생식용은 쌈배추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들어오는 배추 가운데 쌈배추 비중이 15%에 달한다. 그래서 배추 생산량을 조사할 때 쌈배추도 범위에 들어가는지 궁금하다. 만약 빠져 있다면 앞으로는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다.

배추 소비추이도 짚어보자. 국민 1인당 김치소비는 2000년 25㎏에서 2017년 21㎏으로 감소했다. 질병관리본부의 ‘2017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가운데 3명은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다. 집밥을 먹는 사람이 줄어든 대신 외식업체나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비율은 껑충 뛰어올랐다. 이 와중에 중국산 배추김치는 해마다 최대 수입기록을 경신 중이다. 국산 배추의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물론 이 정도 자료만 놓고 ‘배추 소비가 급격히 감소했다’고 보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있다. 평소 도매시장에 반입된 배추는 음식점이나 대형 납품처(김치공장 등)로 소비되는 게 대부분이다. 또 김치공장은 음식점이 주거래처다. 김장철이 아니면 도매시장 경락값이 음식점과 김치공장의 소비량에 비례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주요 소비처인 외식업계의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한으로 인건비가 큰 폭으로 올랐다. 손이 많이 가는 김치를 반찬에서 빼거나 값싼 중국산 김치로 대체하는 식당이 늘었을 수도 있다. 또 배추김치가 필요 없는 외국 음식을 즐기는 추세도 고려해야 한다.

이제 우리가 국산 배추를 얼마나 소비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소비형태의 변화에 따라 폭넓게 집계해야 하고 조사시기도 더 촘촘히 해야 한다. 정확한 배추 생산량조사에 더해 ‘소비변화가 살아 있는 통계’까지 공유할 수 있다면 산지의 재배면적 조절 역시 더 합리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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