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펄프픽션>을 보고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영화를 이런식으로 만들어도 재미있는 영화가 되는구나’였다. 사방에 피가 터지도록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에서도 헛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영화, 영화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쓸데없는 지저분한 대사가 쉴새없이 나오는 영화, 그리고 산만한 이야기 전개구조, 이 모든 것들이 언뜻 보기에는 삼류영화처럼 보이지만 펄프픽션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정말 신선하고 독특하고 재치가 넘치는 영화였다.

영화<펄프픽션>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참 곤란하다. 설명할 만한 특별한 내용이 없다. 게다가 살인, 마약, 강간 등을 보여주는 장면들과 욕이 빠지지 않는 대사들은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 영화가 예술성을 중요시하는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기존의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영화<펄프픽션>만의 독특한 형식 때문이다. 영화<펄프픽션>의 독특한 형식은 영화사에서 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획기적이다. 영화<펄프픽션>의 독특함 중 그 첫 번째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간의 전개가 한마디로 뒤죽박죽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 도입부에 펌프킨(Tim Roth)과 하니 버니(Amanda Plumma)가 식당에서 강도질하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에 또 나온다거나, 부치(Bruce Willis)에게 총을 맞고 죽은 빈센트(John Travolta)가 다음 장면에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영화 도중에 사건의 전개가 산만하고 헷갈리기도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 모든 사건들이 기가 막히게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두 번째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재치가 번뜩이는 대사다. 대사는 영화<펄프픽션>의 총 상영시간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영화의 사건 전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쓸데없는 대사가 대부분이다. 거의 영화속 인물들끼리 떠들어대는 수다 수준이다. 게다가 대사의 내용은 저속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세상에 저속한 수다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러한 대사들을 영화 속 배우들의 코믹 모드의 연기가 아닌 오히려 진지한 모드의 연기로 처리해 더 큰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 쿤스(Christopher Walken)가 어린 부치에게 금시계에 관한 말도 안되는 일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폭소를 넘어 황당하기 그지없다.

세 번째는 잡다한 영화의 이야기에다 다른 영화나 TV등 미국의 대중 문화를 잡다하게 인용하여 뒤섞어 놓아 관객들로 하여금 색다른 재미와 향수를 느낄 수 있게끔 해놓았다. 영화<펄프픽션>의 첫 화면에서도 알려주듯 ‘펄프’는 소름끼치는 이야기들을 다룬 값싼 용지로 된 잡지나 책을 의미하는데 실제로도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간행된 로맨스, 모험, SF, 갱스터 등 여러 장르의 아무런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싸구려 이야기들로 가득찬 ‘펄프’라는 잡지가 있었다.

영화<펄프픽션>도 ‘펄프’ 잡지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별 의미없는 잡다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영화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영화<펄프픽션>에는 여러 다른 영화나 TV쇼를 연상케하는 장면들을 잡다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빈센트와 미아(Uma Thurman)가 5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를 테마로 한 레스토랑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화<펄프픽션>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존바담 감독의 '토요일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1977)'를 연상시키며 있으며 흥미롭게도 '토요일밤의 열기'에서 춤을 추는 주인공도 존 트라볼타이다. 또한 부치가 횡단보도에서 마르셀레스를 만나는 장면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Psycho, 1960)'에서 마리온 크레인(Janet Leigh)이 횡단 보도에서 직장상사를 만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영화<펄프픽션>은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의 독특함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특이한 형식의 영화이다. 영화<펄프픽션>은 영화의 내용에서가 아닌 영화의 독특한 형식에서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고 있다. 이런 독특한 형식으로 인해 영화<펄프픽션>은 관객들에게 다른 영화감상법을 요구하고 있다. 깊게 생각하면서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 특별한 의미를 찾을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영화에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들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마치 아무런 생각없이 보고 즐기다 버리는 삼류잡지를 보고 있다 생각하고 보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형식이 살인과 마약, 강간이 난무하는 저속한 영화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영화<펄프픽션>이 칸 영화제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유이다. 한마디로 펄프픽션은 영화의 이야기는 저급하지만 영화 자체는 획기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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