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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양수영 기자  |  suyoung@hp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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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1  10: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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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사는 젊고 지적인 흑인 여성 호텐스는 양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자신의 생모를 찾고 싶어진다. 자신의 입양기록을 보게 된 호텐스는 자신의 친어머니가 흑인이 아닌 백인임을 알고 혼란스러움을 느끼지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건다. 한편, 공장노동자로 가슴 속에 한과 미련을 품고 살아가는 그녀의 생모 신시아는 딸 록산과도 사이가 좋지 않고 그녀의 삶엔 오로지 한숨뿐이다.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떠나갔으며 자신을 희생하면서 어렵게 키운 남동생 모리스 마저도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 마침내 호텐스와 신시아 모녀의 만남도 이루어지고, 갑작스런 모리스의 제안으로 마련된 록산의 생일파티에서 가족 모두가 조우하게 된다.

90년대를 살고 있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과 오래된 영화의 낡은 분위기, 주인공들의 개성이 깊게 다가온 영화. 특히 신시아와 호텐스가 가까워지는 장면이 이 영화가 지향하는 삶이 아닌가 싶다.

무엇이 신시아를 그토록 힘겹게 살게 했을까. 어린 나이에 두 번의 원치 않은 임신으로 딸을 낳고 한 명은 입양, 한 명은 어렵게 키우게 됐다. 남편도 없이 여자 혼자서 가정을 꾸리는 것도 힘든데 딸 록산은 엄마와 대화도, 접촉도 원하지 않는다. 그나마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과도 살갑지 않다. 그렇게 신시아는 외롭고, 서글픈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동생 모리스의 삶도 팍팍하긴 마찬가지다. 사진사로 일하면서 타인의 행복한 순간을 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은 메말라 간다. 그렇게 이 남매는 말하지 못할 응어리를 가슴에 품고 산다. 신시아의 또 다른 딸 호텐스 역시 갑작스런 양엄마의 죽음과 친엄마와의 만남에 혼란스럽다. 더욱이 친엄마를 찾을수록 새롭게 알아가는 사실에 그녀는 무너진다.

더 이상 복구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들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밀과 거짓말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외친다. “마침내 말했군. 세상이 두 쪽 나지도 않네.” 신시아의 남동생 모리스의 외침이다. 그렇다. 그 순간은 혼란스럽고 상처받을 수 있지만 툭 하고 털어놓는 순간. 아픔은 모두가 위로할 수 있는 대상이 됐다. 비밀과 거짓말을 말한 이 후로 그들은 새로운 내일은 맞이하게 됐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폭로되지 말아야 할 선의의 거짓말, 착한 비밀이 있는 법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영원불멸한 비밀은 없다. 비밀과 거짓말은 언젠가 벌어지고 말 드라마틱한 공개의 순간을 전제한다. 뒤늦게 속살이 드러난 비밀은 이미 선의의 의도를 잃고 상처와 고통과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요지는 세상에 착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소모할 에너지를 비밀을 활짝 열고 다시 관계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데 사용할 일이다.

마이크 리의 영화<비밀과 거짓말>을 보면서도 그런 확신이 든다. 인생이 비밀과 거짓말로 켜켜이 쌓여 투명하지 않을수록, 인간은 온갖 망상과 애정결핍과 불행에 시달린다. 공개의 순간은 처참하게 괴로워도 그 순간을 견디고 나면 상대와의 관계에는 또 하나의 길이 열릴 것이다. 마이크 리는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에 계급, 인종, 성으로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깔아둔다. 그리고 그 실타래의 무게 앞에서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서서히 그 무게를 감당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여가는 인물들의 심정적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곧 관계가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비밀과 거짓말>은 훌륭한 드라마로서의 미덕을 고루 갖췄다. 이야기에서는 탄탄한 힘이 느껴지고 등장 인물의 성격이 훌륭하게 살아 있으며, 배우들은 이를 완벽히 연기해낸다. 특히 브렌다 블레신은 영화<흐르는 강물처럼, 오 그레이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142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영국 영화인만큼 영화 중간에 영국인들의 에티켓과 생활방식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영국의 한 가족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마이크 리 감독의 5번째 장편 극영화로서 리 감독은 1993년 영화<네이키드>라는 작품으로 칸느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50여편의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여주인공 블렌다 블리신은 이 영화로 칸느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우리나라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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