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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살아숨쉬는 고을, 나산
양수영 기자  |  suyoung@hp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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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7  16: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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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는 신화(神話)와 민담(民譚)과 전설로 분류한다. 전설은 민담과 달리 역사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증거물이 남아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傳)이 뜻하는 바와 같이 전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전해 오는 통시간적(通時間的)인 존재이며, 이 시간에 따라 널리 전파되므로 넓은 공간에 파급된 문화 형태라고 하겠다.

전달하는 내용, 전달하는 사람, 전달 방법, 이것을 수용하는 사람, 그리고 어떤 변화가 있다는 점은 언어나 문학·언론과 비슷하지만, 일정한 형식과 내용이 결합한 형태로 전하는 과정을 수없이 대를 물려서 현재까지 이르렀다는 시간의 여과(濾過)와,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살아남은 것만 전승되었다는 점이 다른 문화 현상과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아무 것이나 전설이라고 할 수 없고, 전설은 일정한 민족 또는 지방에서 민간에 의해 내려오는 설화인데, 신화가 신격(神格) 중심이라면 전설은 인간과 그 행위를 주제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에 나산의 두 번째 답사는 나산고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찾아 나섰다. 그 전설을 통하여 나산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하고자 한다.

 

돈내보전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아침이다.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는데 답사 출발시간에 비가 잠깐오더니 이내 곧 그쳤다. 나산면사무소에 들려 윤익한나산면장님을 뵙고 답사지를 향했다. 날씨는 청명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산강을 따라 돈네보전설이 깃든 곳을 찾아갔다. 현재 나산강의 물은 많이 말라 있었지만 옛적에는 강물이 넘쳐흐를정도로 물이 가득하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돈내보(洑)는 보에서 10리 가량 아래에 있는 나산면소재지인 삼축리 앞 들 5백여 정보에 물을 대주는 수리시설로 관개시설로는 큰 것이다.

이 보는 1968년에 시멘트로 튼튼히 만들어졌지만 그전에는 돌로 만들어졌으면서도 튼튼한 편이었다고 한다. 일부 자료는 이 보 축조년대를 1592년이라 쓰고 있는데 사실이라면 4백여년 전 수리시설이다. 지금 볼 수 있는 시멘트 보는 길이가 60여m로 나산에서 2km쯤 상류에 있으며 삼도-나산간 도로에서 1백m거리에 있습니다. 이 보 50m거리에 양수장 건물이 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보의 위치가 물결이 도는 돌머리라 유지 관리의 어려움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보 밑에는 보의 물을 이용해 물레방아를 돌려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보는 이슬비만 내려도 금새 터져버려 이 보에 의지해 농사를 짓는 삼축리 사람들은 애를 태웠으며 물레방앗집은 항시 생계에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비가 와 보가 터져 또 보수할 것을 걱정하던 삼축리 사람들과 물레방앗간 주인 꿈에 신선이 나타났다. "이 곳에 처녀를 제물로 받치지 않는 한 너희는 절대 보를 온전히 보전하지 못할 것이니라"고 현몽했다. 이 꿈 얘기는 곧 마을에 퍼졌으나 제수로 받칠 처녀를 구할 길이 없었다.

물레방앗간에는 돈내라는 착한 딸이 있었다. 보가 터질 때마다 생계가 위협을 받는 가정형편과 보 공사에 바칠 처녀 때문에 수심에 잠겨있는 아버지를 생각한 효녀 돈내는 아버지 몰래 보에 나아가 스스로 투신자살 했다. 이후부터 이 보는 3백여년간 터질 줄 몰랐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이 보를 '돈내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박첨지라는 사람이 동네 일을 위해 자기 딸 도례를 제물로 희사했다는 설도 있다.

이 돈내보는 여아를 수장하여 제수를 바치고야 터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여아를 수장시켜 만든 보라 비가 오면 이 봇물이 흐르는 소리는 마치 처녀가 우는 소리와도 같고 '돈내, 돈내'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바위전설

   
 

문바위전설을 찾아 우리는 이인정을 찾아 나섰다. 지난번 답사에서 이인정을 취재하긴 하였는데 이인정 앞에 서 있는 바위를 유심히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범상한 바위가 아니라고는 생각되었었다. 문바위는 안씨성을 가진 주민의 가정집 담장사이에 우뚝 서있다. 담을 쌓으면서 그 바위를 그대로 보전한 것을 보면 아마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을 알고 있는 듯하다. 대문을 두드렸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다.

먼 옛날 승려 한분이 공양미를 시주받기 위해 이따금 이 마을에 들리곤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 숭유배불사상이 심화된 안씨들인지라 중이 이 마을에 들어와 시주를 청할 때마다 어느 한집도 거들떠 보지 않고 시주는커녕 갖은 학대와 수모를 가했다. 화가 난 중은 어떻게 하면 앙갚음을 할까하고 궁리하다 이인정을 지나면서 ‘어허, 저런! 이 마을도 저 바위 때문에 마을의 운세가 뻗지를 못하는 군. 훌륭한 인재를 얻으려면 저 바위를 깨뜨려야 할텐데’하고 중얼거렸다.

이 소리를 들은 안씨들은 문중회의를 열고 바위를 깨뜨려 몰골이 사납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그후 마을이 점점 기울고 폐허가 되자 그때서야 주민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친 끝에 지금은 중만 보면 극진히 대접하는 미풍이 조성되었다 한다.

 

앵소산 맹리의 전설

   
 

앵소산은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鶯巢穴명당이 있다는 산이다. 실제로 유촌마을을 찾아가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형세가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양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엄마의 품속에 들어온 양 아늑하고 포근한 마을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앵소혈명당의 전설을 따라 김해김씨 묘를 찾아갔다. 다행히 문중사람들이 벌초를 하기 위해서 묘지를 가고 있다가 우리 일행과 만났다. 덕분에 쉽게 묘지를 찾을 수 있었다.

마을에 살고 있는 김해김씨의 파조는 목경이요, 입향조인 맹리는 세종때 인물인데 이곳에 낙향하여 속세를 멀리하고 산수를 사랑하며 살았는데, 그의 5대손인 망헌 김광립은 인조때 안주목사로 부임 중 이괄의 난을 맞아 도원수 장만의 휘하에서 공을 세웠으므로 진무공신에 올랐고 그의 아들 속(涑)은 부산진 수군절제사를 지냈으며, 속의 아들 7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무과에 급제하자 광해군이 국지관을 불러 현지를 답사하여 가문의 내력과 지세를 알아보게 하였다.

국지관이 현지에 임하여 내사한 결과 앵소산은 명당으로 계속 인재가 속출하고 가세가 비대하여 언젠가는 나라에 큰 화근이 될 징후가 엿보인다고 광해군에게 무고하여 이에 성미가 급한 광해군은 곧바로 앵소산의 선산을 파헤치고 지금의 쌍령재산혈을 끊고 백양동으로 내려 뻗은 산맥을 절단하여 맹리의 비석을 쓰러뜨려 없애라고 명령하였다. 지엄한 왕명으로 모든 산혈을 끊고 비석을 쓰러뜨리자 부녀자들까지 이에 항거하다가 유혈이 낭자하여 피가 사흘동안 흘렀다는 가슴아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그후 맹리의 후손들은 벼슬한 사람이 없다고 전해온다.

 

평릉고분군 전설

   
 

삼축리 상축마을 뒷산에 평릉(平陵)이라는 고분이 있는데 구전에 의하면 이 분모중 1기는 왕 또는 부마묘라 전해오고 있으며 예전에는 묘각과 묘지기가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묘각과 묘지기는 없어졌으나 이 묘를 잘 돌봐주고 벌초를 해주면 큰 인물을 낳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여러 사람들이 남몰래 가꾸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나 짐승의 피해를 받지 않고 있으며 현재도 주인있는 묘보다 더 잘 보존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지금 현재 고분군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풀이 우거져 있으며 사람의 손길이 끝난지 오래되어 보였다. 단지 안내판만이 풀속에서 이곳이 평릉고분군이라고 알리고 있었다.

우리는 답사를 마치면서 나산의 새로운 문화유적을 찾은 듯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수백년동안 나산면에 내려오고 있는 전설은 마을의 유래를 설명해 주고 마을 신앙을 강조하기도 하며 마을 주민의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워 오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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