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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역사와 자연의 숨결이 숨쉬는 곳, 군유산
양수영 기자  |  suyoung@hp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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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9  1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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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면은 함평군의 서북쪽에 위치한 중산간지대로 영광군과 6개읍면에 접해있으며, 대부분의 마을이 국도 23호선과 서해안고속도로, 군유산 계곡평야를 따라 형성되어 있고, 군유산과 동정제, 대동제 등 고려시대부터 지명의 변함이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함평자연생태공원과 상해 임시정부시설 군무장, 재무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기념관, 동학 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장경삼, 동규, 응규 삼형제의 공적을 기리는 동학혁명탑이 있다.

이번에는 군유산의 유래와 군유산차 역사와 동학농민혁명 장경삼 옥삼 공삼 선생 공적비와 백비를 중심으로 우리의 답사를 진행했다.

 

군유산의 역사와 설화

손불과 신광은 군유산을 중심으로 백제불교의 도래지라는 설이 있으며, 마라난타 세존이 계실 때는 군니산(신중동국 여지승람)이라 칭했으며 훗날, 상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하여 서상산(瑞像山)이라 개칭되었다가 고려 왕건이 나주 입성을 도모키 위하여 기마병 부대를 육성하게 되고(삼천군마설) 신광면 삼덕리에 위치한 서군교에서 군대를 이끌고 무안 일로에 있는 파군교에서 후백제군을 함락하여 나주입성을 하게 되었다한다.

   
 

그 후 왕건이 기마병부대의 훈련장소로 이용하였다하여 군유산(君留山)으로 지명이 바뀌며, 전설에 고려 공민왕이 3일 동안 노닐다 갔다 하여 군유산(君遊山)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이 왜 수많은 명산들을 놔두고 이곳 나지막한 산에서 노닐다 갔겠는가? 어느 시대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사료를 검토해보면 송사리 사간동은 황씨 성을 가진 사간원이 살았는데 사간원이 하는 일로는 임금께 일상적인 정책과 정치적 문제를 간하는 일을 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간동에는 사간원 이외에도 많은 귀족들과 관원들이 살았다는 설이 있다. 이를 중심으로 왕을 비롯한 왕족들이 노닐다 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송사리 송계마을에는 아전(현재 공무원)신분의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이 현재의 사간동과 송계를 합쳐 송사리라는 지명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렇듯 군유산은 해발 403m의 나지막한 산이기는 하나 역사와 유래를 가지고 있다.

 

군유산 차

군유산 차는 백제불교의 전파시기와 맞물려 중국 남부지방의 녹차 씨앗이 불자들에 의해서 심어졌지 않았나 싶다. 불자들에 의해서 만들어 마시던 녹차를 고려시대 관료와 아전들이 즐겨 마시다가 고려왕들에게 진상이 되었을 것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속에 존재하고 있는 군유산의 야생차는 역사가 깊은 만큼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함평군은 천연적, 자연적 가치로의 보전과 후손에게 길이길이 물려줄 책임이 있다 하겠다.

함평지역에는 현재 5군데의 다원과 제다인이 있다. 신광면 송사리 서초다원의 군유산차(김재길,윤명희), 대동면 서호리의 부루다원의 부루차(전명오, 배유림), 나산면 송암리 양산암의 귀우차(법영스님), 대동면 서호리 월인천강나비황차원의 나비황차(효천스님), 나산면의(노혁귀씨)가 있다.

 

동학농민혁명 장경삼 옥삼 공삼 선생 공적비

흥성 장시 삼형제가 살던 마을은 현재의 신광면 계천리 사천마을이었다. 사천마을은 흥성 장씨의 동족마을로 중조 영(英)의 8세손인 이길(以吉)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여하고 사간원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뒤 벼슬에서 물러난 뒤 이곳에 은거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인근 지역에서 학식과 후덕한 성품으로 인정받던 이들 3형제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자 부근의 많은 농민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괴치마을 앞 들에서 군사훈련을 했는데 장씨 삼형제가 군사를 조련한 곳이라는 뜻으로 “삼장들”이라 불리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삼정들”로 변음 되었다. 장경삼은 동학농민군토벌시기인 1894년 12월 9일에, 장옥삼 공삼은 이듬해 2월 17일 함평에서 처형되었다. 이들의 집은 헐리어 함평관아 객사 재목으로 사용되는 비운을 맞는다.

 

백비 전설

먼 옛날 효성이 지극한 부부가 홀어머니 한분을 모시고 살았다. 노모는 병을 앓아 누워 계시면서 망령이 들어 하나밖에 없는 어린 손자가 눈에 보일 때마다 개로 보였던지 잡아서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하루는 부부가 의논 끝에 서로 위로하면서 홀어머니의 여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사랑스런 자식을 어머님께 바치기로 하였다. 참으로 비장한 결단이었다. 차마 못할 짓인 줄 알면서 창자를 끊는 아픔을 누르고 귀여운 아들을 솥에 넣고 불을 지피다가 솥뚜껑을 열어 본 즉 애는 간 곳이 없고 거기에 커다란 동자삼 한 뿌리가 삶아져 있었다. 불가사의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 마침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마을에서 놀다가 돌아오면서 어머니를 부르지 않겠는가. 부부는 너무도 감격해서 아들을 안고 한참 울었다. 효심에 감동한 하늘이 아들을 동자삼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 동자삼을 잡수신 어머니는 병이 나아서 오래 오래 살았고 그 효자 부부도 귀여운 아들을 데리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백비를 내린 까닭은 어머니에 대한 효행은 갸륵하나 인명을 소홀히 한 죄 또한 묵과할 수 없어 백비를 내렸다 한다. 그 백비가 신광면 계천리 계월 마을 앞 장산들 논두렁에 세워져 있던 것을 1987년 5월에 사동입구로 옮겨 놓음으로써 귀감이 되고 오가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문화답사를 마치면서

군유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신광면 송사리는 고요한 듯 조용하고, 신비로운 듯 근엄한 자태를 가지고 있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듯한 송사리를 향해 가는 내내 때묻지 않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천혜의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군유산차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군유다원의 김재길, 윤명희부부와의 만남은 참으로 뜻깊은 만남이었다. 부부로부터 군유산의 역사와 유래, 차의 역사를 들으면서 얼마나 이 부부가 군유산을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송사리에 함평축산특화산업단지 조성계획이 발표되면서 송사리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이곳에 함평축산특화산업단지를 조성하게 되면 군유산과 송사리가 사라질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따라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군유산과 자연이 훼손되어질 위기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다.

군유다원 김재길, 윤명희부부는 “이곳에 축산특화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안됩니다. 그렇게되면 군유산과 송사리 또는 보여리까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저희는 끝까지 이곳을 지키려고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지역발전의 기회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지역개발 사업들로 인해 우리가 보존하고 지켜야하는 문화유적들과 유적지, 보물들, 전승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와 안타까움이 가득 안은체 답사를 마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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