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남

(주)BNK 대표이사

업무 차 해외 이곳저곳으로 출장을 자주 가는 편이다. 방문한 나라의 가장 번화한 대도시도 보기는 좋지만, 땅을 일구는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났기에 화려한 대도시보다도 소박한 농촌에 더욱 마음이 쓰이고 눈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쌀을 눈여겨보곤 한다. 자그마한 쌀 한 톨에도 그 나라의 농촌 정책, 농업 기술, 문화에 따라 추구하는 품종 등 수많은 것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이 흐르고 흐르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네 농촌 현실과 비교하게 된다. 언론에서 4차 산업혁명을 마르고 닳도록 부르짖는 이 때, 농업은 아직도 1차 산업 취급을 받으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 까닭은 우리 농민들과 정부 사이에서 발생해온, 아주 고질적인 병폐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은 무엇이든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계화 시대다. 그런 가운데 우리 농촌은 쌀 시장 개방으로 인해 끊임없는 위협을 받아왔고, 이로 인해 우리 자영농 규모는 점점 줄어들어왔다. 농사를 지을수록 빚과 한숨이 늘고, 수확의 기쁨을 누려야 할 때에 숨통이 턱턱 막혀오는 상황에 놓이자 농민들은 결국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인지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시야로 보지 않아 중장기적인 대책이 아닌, 언 발에 오줌 누고 아랫돌 빼어다 윗돌 괴는 식의 어설픈 대책만 반복하다보니 농민들과 정부의 사이는 더 이상 틀어지기도 힘들 정도로 등을 돌린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벌어진 일에 정부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 이상 세계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어엿한 국제사회의 일원이고, 세계적인 흐름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끝내는 도태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미 농촌 인구의 대다수는 초고령에 진입했고, 값싼 농산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국경을 넘어오는 가운데 이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이 상황을 말이다.

답은 늘 우리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남북정상회담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파격적으로 꼽혔던 것이 도보다리 담화였다. 서로 등 돌린 지 오래였던 양국정상이 취재진도, 보좌진도 물린 채 허심탄회하게 속을 터놓고 함께 걷다가, 쉬다가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면은 그 장면을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한국적인 방법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지금 정부와 농민, 농촌 사이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도보다리 담화의 자세다. 서로 누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탓하는 것은 잠시 내려두고 앞으로 닥쳐올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함께 타파해 갈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며 속을 터놓고 같이 걸어 나가야 한다.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수확철의 시위와 그 순간을 모면할 방법만을 내놓고 실행하지 않는 식의 소모적인 싸움을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경제논리를 떠나서 우리 모두의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할 때인 것이다. 민관이 합심하여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우리 농촌이 살아남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고부가가치 상품 작물의 생산, 품종 개량과 신품종의 개발, 그리고 개발한 신품종의 수출 통로 개발에 이르기까지 할 일이 수두룩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남북이 먼 길을 돌아왔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이루어낸 것들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는 우리 모두의 눈으로 확인했다. 이와 같은 자세로 농민과 정부가 함께 다시 도보다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면, 가장 한국적인 방법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냄과 동시에 농민과 정부가 함께 진일보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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