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영국의 탄압속에서 자주독립을 외치며 고군분투했던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아일랜드를 무대로 한다. 그곳의 어느 자그마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청년들의 숭고한 독립운동, 국지전과 희생, 형제의 화합과 갈등에 초점을 맞추며 ‘대영제국’의 타이틀 아래 자행된 비상식적 식민 통치를 담대하게 비판한다.

주인공 데미언과 지역독립군의 우두머리인 그의 형 테디는 거듭되는 마을 청년들의 피살 사건에 분노하며 이전보다 더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저항 운동을 계획하게 된다. 데미언은 영국 런던의 병원에서의 근무가 예정된 신임의사였는데 형의 간곡한 부탁과 터무니없이 악랄한 영국군의 횡포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독립군에 합류하게 된다. 데미언과 테디는 다수의 게릴라 전투와 감옥투쟁 등을 거치며 형제이자 리더로서 집단 내 입지를 공고히 하지만 이후 영국 정부와 아일랜트 자유국의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대척점에 서게 되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만다.

데미언은 조직에 대한 정보를 누설한 죄로 친한 이웃동생이자 소년 독립군인 크리스를 직접 처형하게 된다. 그동안의 정과 동지애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조국이 이럴만한 가치가 있는 거겠지” 나직이 독백을 내뱉으며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이상하게 그 순간 우리는 데미언이 냉혈한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한 나라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치르게 되는 희생이 필연적임을 은연중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거 일제 시대가 떠올라서 그러한 행위가 더 깊게 공감 된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한 개인으로서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 ‘독립’을 주장한다.

데미언의 ‘신념’은 ‘이념’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맞서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굶주림과 무자비한 폭력, 사람하는 사람을 수치스러운 몰골로 전락시켜버리는 영국군의 압박에도 끝내 이성을 잃지 않고 조국의 완전한 자유 독립을 위해 정진한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일종의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역사적 사실을 풀어내는 과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곡차곡 동질감과 분노로 축적되어 마침내 특정한 장면에서 폭발하도록 만든다. 심지어 그 순간에도 영상과 사운드는 잔잔하기만 하다.

완전 자주독립을 외치던 동생 데미언과 불평등 조약에 동의하여 새로이 자유군에 편입한 형 테디는 결국 둘도 없는 동지에서 적이 되고 만다. 테디는 데미언을 회유하려 하지만 신념을 굽히지 않는 굳건한 동생의 모습을 보고 비극적 최후를 직감하게 된다.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자연스레 인간의 신념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조국’이란 곧 개인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그것을 왜, 그리고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데미언 역의 킬리언 머피 연기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사실 다크나이트 시리즈 배역 이외엔 딱히 기억나는게 없어 어떨까 궁금했었는데 예상외로 독립영화의 진중한 분위기에도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예기치 못한 댄의 죽음에 분노하는 씬과 감옥에서 처형당하기 직전 보여준 강단 있는 표정, 눈빛은 굳은 신념으로 가득 찬 데미언 역에 제격이었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우리나라의 과거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여태껏 강국의 축면에서 미화되어 왔던 역사 속 슬픔들이 본 작품처럼 열국의 투쟁 어린 그것으로 재탄생하게 되면서 올바른 역사관 시민의식을 곱씹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영화<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주는 감동이 단순히 담대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담대함을 넘어선 위대한 영웅들의 투쟁기이자 우리들의 소망과도 같은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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