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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강남지방 정원 답사기-1
강복수  |  webmaster@n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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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26  13: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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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복수 산림기술사

불과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조경이나 정원 또는 경관이라는 표현은 우리들에게 다소 낯설고 생소한 분야로 여겨졌다. 단어의 의미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에 치중하다 보니 주변을 가꾸고 장식하는 데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인 상황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정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으며 역사적인 배경이나 지역적인 환경에 따라 그 양식을 달리하여 발전과 쇠퇴를 반복하여 왔다. 동양의 정원문화는 중국의 주나라에서부터 시작되어 명·청 시대에 이르러 찬란한 원림(園林) 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에서 시작된 정원문화는 삼국시대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일본인 특유의 섬세하고 정교하며 축소지향적인 독특한 조경 양식으로 발전시켰다.

최근 우리의 생활여건이 급속도로 향상됨에 따라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삶을 보다 가치 있고 보람되게 사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의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쓰여지고 있는 이유는 삶의 가치 기준을 근로를 통한 경제적 부의 확보, 즐거움이 보장되는 휴양이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충족시키는 경관 부여 등 과거에는 관심의 대상에서 다소 동떨어져 있던 일들이 이제는 일상처럼 우리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여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해주는 우리 주변의 정원과 각종 조경시설물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 해외여행이 빈번해지고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짐에 따라 사람들의 경관에 대한 이해도나 요구수준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번 호에서는 중국 강남 지방의 전통원림(정원)과 도시의 공공정원, 가로변 녹지대와 대규모 건축의 현대식 조경시설을 둘러보고서 느낀 소감과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지난 30여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몸소 체험하고 느껴왔다. 중국 또한 1978년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한 이래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그야말로 상전벽해와 같은 발전을 계속하여 왔다. 아직도 중국이 70~80년대의 한국의 모습이려니 하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편협된 무지의 소치였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태호석, 누, 연못으로 구성된 중국 전통원림의 모습

원림은 정원을 일컫는 중국식 명칭으로 그 시초는 기원전 7~8세기 주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진나라 시황제는 둘레가 12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원림을 조성했다 하니 권력자의 호사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짐작할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로 서민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최대 관심사였다면 권력을 가진 자나 재력가에게는 삶을 어떻게 즐기며 행복하게 살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사였던 모양이다. 중국의 강남 지방은 양쯔강 이남 지역을 말하며 끝없이 펼쳐진 평야지대와 거미줄처럼 연결된 수로는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고 건축, 서예, 예술분양 등의 문화를 융성시킬 수 있었다. 특히 소주지방은 중국 원림문화의 중심지로서 아름다운 자연조건, 태호 지역에서 생산되는 기기묘묘한 태호석, 발달된 건축기술 및 예술 분야의 조화가 어우러져 강남지방 원림문화의 질적인 발전과 확산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지방의 재력가나 권력자가 조성한 것을 사가원림이라 하고 궁궐이나 황실소유 원림을 황실원림이라 한다. 평야지대가 많은 강남지방은 낙향한 관리나 지방의 재력가가 조성한 사가원림이 많으며, 황궁이 소재하고 있는 북경에는 황실원림이 많이 조성되었다. 북경의 이화원은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황실원림으로 그 규모는 88만여 평에 이른다. 19세기 초 영국의 하이드파크가 일반 국민들에게 공공정원으로 개방되기 이전까지 정원은 단지 황제나 권력자의 사냥터나 유희의 장소로만 사용되었다는 것은 절대권력의 횡포가 얼마나 오랫동안 백성들을 고단하게 하였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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