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수 산림기술사

산림공원사업소

3월의 꽃이 원색이라면 5월의 꽃은 백색이다. 이른 봄, 차갑게 굳어버린 시린 땅을 뚫고서 여기저기 낙엽 사이로 노랑의 원색으로 피어내는 복수초는 회색빛 낙엽과 대비되어 유난히도 화려한 색감으로 다가온다. 뒷동산의 참나무류가 새싹을 튀우기 전 큰 나무에 가려 존재조차도 미약하던 생강나무의 여리고 여린 샛노란 꽃잎은 생명의 경이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어떤 이는 생강나무 꽃을 산수유나무 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으나 층층나무과의 산수유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지방 어느 곳에서나 생육 가능한 나무로 특별히 경관이나 약용을 목적으로 식재한 경우가 아니면 산림 내에서 자연 상태의 산수유나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3월의 숲속에는 생강나무와 함께 진달래, 박태기나무, 홍매화, 동백, 영춘화, 개나리 등이 저마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으로 장식한다면 5월의 산하는 이팝나무, 돌배나무, 팥배나무, 산사나무, 아카시나무, 산딸나무의 순백색 꽃으로 녹색의 융단 위를 수놓는다.

5월의 꽃 중에서도 아카시꽃은 그 어느 꽃보다 우리들에게 특별한 정서와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아지랑이 살랑이던 늦은 봄 날, 따스한 봄기운으로 나른한 오후에 어디선가 풍겨오는 진하고 달콤한 아카시꽃의 향기를 맡노라면 잠시라도 복잡하고 다난한 현실을 벗어나 마음의 평정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의 오감과 생각을 지배하는 5월의 아카시꽃은 언제부터 우리 곁에 오게 되었을까?. “동구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사오십대 이상의 장년층이라면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동요 『과수원 길』을 모르는 이는 없을 듯하다. 아카시꽃이 가진 향기롭고 서정적인 정서를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한 노래가 또 있을까.

 

사실 우리가 어릴 적에 배워서 흥얼거렸던 동요속 『아카시아나무』는 우리들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카시나무』의 잘못된 이름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그동안 이름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워낙 오랜 기간 사람들의 뇌리 속에 각인된 아카시아라는 이름이 쉬이 바뀌어 질리는 만무하다. 아카시나무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00년대 초로 철도변의 녹화 및 피해방지를 위하여 식재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아카시나무는 토양적응력이 뛰어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뿌리는 공중질소를 고정하여 토양의 성질을 개선하기도 한다. 아카시나무는 북미가 원산으로 단단한 재질의 목재는 건축자재로 널리 활용되는 등 매우 가치 있는 나무로 평가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벌꿀의 80%는 아카시꽃을 밀원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나무는 호주를 중심으로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줄기는 억센 가시로 뒤덮여 있다. 아카시나무나 아카시아나무는 공통적으로 줄기나 잎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린나무일 때에는 억센 가시를 내지만 수목이 점점자라서 잎을 가해하는 동물로부터 피해가 줄어들게 되면 가시를 내지 않게 된다. 식물은 저장된 에너지를 생장이나 개화, 결실을 하기 위하여 소비하게 되는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에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아카시꽃은 수정을 위한 수단으로 꿀벌이나 곤충을 유인하기 위하여 한낮에는 더욱 강한 향기를 내뿜다가 곤충이 활동하지 않는 밤이 되면 향기의 발산을 억제한다. 꽃이 향기를 내뿜는 것은 식물자체로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의미하며 밤에는 그 발산을 억제함으로써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

아카시나무의 학명은 Robinia pseudo acacia. L이며, 아카시아나무의 학명은 Acacia catechu다. 아카시나무가 아카시아나무로 불리워지게 된 이유는 학명상의 pseudo acacia 중 pseudo는 빼버리고 acacia만 그대로 읽어서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아카시나무의 학명상 pseudo(슈도)는 가짜를 의미하며 뜻을 풀이하면 가짜 아카시아라는 말로 아카시아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종류의 나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참죽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참죽나무와는 전혀 다른 가짜 참죽나무를 가죽나무라 부르는 것과 유사한 경우이다.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잘못된 이름이 바로잡히지 않고 지금까지 그 이름이 진실인양 불리워져 왔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무지와 무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아카시나무는 필요에 의해서 도입되어 식재되었지만 억센 가시와 왕성한 생장력으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미움과 천대를 받아왔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목재 및 밀원수로서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됨에 따라 수목의 식재 및 보호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오랫동안 본래의 이름을 잊어버린 채 멸시와 천대를 받아 온 과거를 털어버리고 순백의 아름다움과 달콤한 향기로 다가오는 아카시나무의 고귀한 이름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불러주자.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아카시나무를 등한시 해 온 잘못을 조금이나마 보상해주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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