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장 따뜻한 색, 블루(Blue Is the Warmest Color)>는 이미 '아델의 삶(또는 아델의 이야기)'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칸 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화제작이기도 하다. 동성애라는 소재와 강도 높은 표현, 그리고 삶과 사랑에 대한 감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담담한 묘사로 당시 스티븐 소더버그의 <쇼를 사랑한 남자>, 알렉산더 페인의 <네브래스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치고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으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우리나라의 유명 평론가들조차 표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했을 정도였다. 이후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면서 영어권의 제목인 'Blue Is the Warmest Color'를 우리말로 옮긴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이름으로 개봉되기에 이른다.

튀니지계 프랑스 감독인 압델라티프 케시시는,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영화 애호가들 정도에게나 이름이 알려진 감독이다. 케시시의 작품이 국내 극장에 걸린 것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처음이다. 이번 영화는 동명의 프랑스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원작은 동성애라는 소재를 통해 사랑이 완성되기까지의 어려움이 강조되어 있는 한편, 케시시의 영화는 가족들의 반대나 학교생활에서의 어려움 등을 잘라내고 두 사람의 관계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낭만적인 결말도, (레즈비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 입각한 사건들도 없이 관계의 시작에서부터 파행에 이르기까지 현실 그 자체만 플롯에 남는다.

영화의 이런 점을 더욱 부각하는 것은 클로즈업과 롱 테이크로 요약할 수 있는 감독의 일관된 연출이다. 아델의 얼굴만 스크린에 가득 들어찬 채로, 수 분 동안 그 눈빛을 바라보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아델에게 몰입하고 감정이입하게 된다. 게다가 전개상 더 짧게 자르거나 없어도 될 법한 장면들까지 컷 전환 없이 이어가다 보니 관객은 마치 '아델의 삶'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에까지 이른다. 아델 역을 맡은 배우,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날 것 같은' 연기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연출에 기인한다.

앞서 언급했듯 동성애라는 낯선 소재를 다룬데다가, 일상에서 쉽게 경험하거나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장면들이 강렬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이 때문에 이해를 포기하고 두 사람 사이의 감정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연출이기도 했다. (제목에도 적혀 있는) '파란색'이 두 사람의 이런 감정을 시각화하는 지표로써 작용하는데, 엠마의 파란 숏 컷으로 처음 등장한 파란색은 후반부에 이르면 엠마의 머리카락 대신 아델의 옷에 물든다. 아델이 사랑한 파란색은 이제 엠마에게 남아있지 않은 대신, 아델의 생각과 몸짓 하나하나에 물들어 있음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해서인지는 몰라도 영화 곳곳에 시린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화면들도 감상 포인트로 꼽을만하다. 분홍빛 꽃에 화면 위에 피어 있고, 그 아래 파란 벤치에 쪼그려 앉아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는 아델의 노란 머리, 아델과 엠마가 대화를 나누는 너머 주황색으로 빛나는 햇살에 반짝이는 녹색 나뭇잎들, 그리고 에메랄드빛 바다에 섬처럼 떠 있는 아델의 흰 얼굴을 바라보다 보면 세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간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일반 관객에게는 쉽게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웃음이나 눈물을 자아내기 위해 의도된 장면도 거의 없으며, 파란 옷을 입은 아델이 회색빛 현실에 그대로 '던져지는' 결말 역시 새로운 로맨스나 엠마에게의 복수를 기대했을 관객을 가차 없이 저버린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감독의 (더 나아가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매긴 평론가들의) 시선을 간접적으로나 느껴 보고 싶다면 한 번쯤 감상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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