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대판들을 생각하며...

 

한국 인구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살지 못하고 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최근 유엔난민기구(UNHCR)의 안토니오 구테레스 대표는 “10년 전 3800만명이던 난민이 올해는 6000만명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전쟁과 기아를 피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이들. 그들이 국경을 넘어선 순간 이후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프랑스 영화 <디판>은 스리랑카인 난민 남성이 프랑스로 넘어와 겪는 이야기다. 스리랑카 타밀족의 반군이던 남성은 전투로 가족을 모두 잃는다. 그는 지옥과도 같은 전쟁터를 벗어나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망명을 시도한다.

그는 브로커를 통해 ‘디판’이라는 한 남성의 여권을 구하는데, 그 여권에는 디판에게 아내와 9살짜리 딸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남성은 망명을 위해 전혀 모르는 한 여성과 소녀를 급하게 찾아와서는 가족 행세를 하면서 프랑스로 건너가 ‘디판’이 된다.

디판의 가족은 갱단이 우글대는 파리 외곽 지역에 자리 잡는다. 디판은 건물관리인으로, 아내인 얄리니는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영화 속에서 디판이 이민자로서 겪는 삶은 ‘또 다른 전쟁’이다. 두 사람은 전쟁을 피해 왔지만 두 사람에게 허락된 보금자리는 갱단의 총알이 오고가는 우범지대다. 낯선 피부색에 행색이 초라한 이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영화는 스리랑카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어디에나 폭력과 경계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냉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실제 가족이 아니지만 서로를 가엾게 여기고 보듬으려 애쓰는 디판 가족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영화<디판>을 통해 평화를 찾아 초원이라는 동네로 이사온 이민자들의 모습을 비춰주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이민자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또한 이 영화에서는 이민자들이 겪어야할 차별 무시 등과 같은 외적상황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을 꺼려한다. 오로지 디판과 그의 동거인들의 시선을 통해서 그들이 겪고 있는 내적문제 즉 그들만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비춰주고 있다.

난민 출신 배우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연기로써 주제에 밀착되는 기록영화적 분위기를 창출해낸다. 감독은 세계적 관심사가 된 난민문제를 자신의 독창적 시각으로 전개시키면서 치밀한 구성과 탄탄한 연기력으로 영화의 독창성을 확보한다. 영화 <디판>은 과장된 장면 연출과 판타지를 배제하고, 절제와 ‘소리없는 분노’의 미학으로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다.

사실 영화<디판>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여러 가지 소문들이 많았다.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영화<사울의 아들>은 인간의 근원적 아픔에 관한 메시지를, 감독상을 받은 영화<자객섭은낭>은 롱테이크에 의한 카메라 기법의 독창성을 보여줌으로써 영화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디판>은 메세지도 화면의 연출도 아쉬웠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디판>은 뛰어난 드라마를 보여준다. 스리랑카를 떠나온 자들이 도착한 ‘프헤’의 반어적 모습, 그 반어적 세상에서도 이방인이어야 했던 자들의 고충 그리고 자신들만의 문제만으로 아파야했던 디판들의 모습은 분명 칸 영화제라는 것을 입증해준다. 수상내역의 순서는 둘째치고서라도 이 영화가 칸에 어울리는 이야기였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한 셈이다. 그런의미에서 영화<디판>이 가지는 의미는 충분하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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